[책]정치권 빗댄 소설 '목성 잠언집' 작가 복거일씨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3분


《영어 공용화론과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의 강조 등을 통해 우리사회의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복거일씨(56).

미래 우주식민지의 지도층을 빗대 현 정세를 풍자한 소설 ‘목성 잠언집’을 최근 내놓아 정치권 안팎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자신의 데뷔작 ‘비명을 찾아서’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영화사 인디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싸움닭’이다.

24년에 걸친 대전 생활을 접고 20일 서울 수색으로 거처를 옮기는 그를 둘러싸고 최근 벌어지는 논전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

-‘목성 잠언집’ 의 책머리에 ‘시류를 거스르며 글을 쓰는 어려움’을 피력했는데, 작가가 생각하는 시류란 무엇이며 시류를 거스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나라 지식계는 좌파적 경향이 지배적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를 거슬러, 정부가 개입하고 개인을 이끌어나가려 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이를 내가 꾸준히 지적해온 만큼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상대가 지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화두는 권위주의’라고 지적했는데.

“집권자가 도덕적으로 타자에 우월하다고 자신할 경우 압제적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런 정권일수록 개개인의 자유에 대해 간섭적이다. 청교도적 사회주의를 형성한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좋은 사례다.”

▼"현정권 정책집행에 실망"▼

-현 정권이 서구 좌파정권보다 더 좌파적이라고 생각하나.

“성향은 유사하다. 문제는 정책이 세련되지 않게 집행된다는 점이다. 집권당이라면 많은 인적 자원을 점유하기 마련인데, 지금 집행되는 정책들은 집권당이라고 믿기 힘들 때가 많다.”

-진보주의 진영에서는 현 정권이 실망을 불러올 정도로 보수적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번 정권을 위해 역설적으로도 다행한 점은, 정책은 일종의 끈끈이같은 ‘점액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집권자가 마음대로 결정을 하더라도, 집행하는 관료층에서는 여러 가지 장애가 튀어나온다. 남북관계도 집권층에서 밀어붙이려 했으나 현실적으로 수도 없는 문제가 제동을 걸지 않는가.”

-이른바 ‘언론개혁’에 대해서도 소설을 통해 풍자했는데.

“언론은 독자가 올바른 정보를 선택함으로써 시장에 의해 개혁되는 것이다. 그 외의 개혁은 필요치 않다.”

▼"언론개혁 시장에 맡겨야"▼

-소설에서 ‘햇빛정책’에 대해서도 따가운 시선을 던졌는데, 현정권의 햇볕정책을 평가한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다. 정책이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북한은 요구하는 대로 다 얻고 있는데 왜 자신들의 행동을 바꾸겠는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남북관계는 어떤 형태로 조율되리라고 보나.

“외교적 수사 외에는 미국이 입장을 바꿀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을 평가하자면.

“‘때가 오면 사람의 참 됨됨이가 드러난다’는 말을 증명한다. 사람이나 국가나 힘을 가진 존재는 그처럼 힘을 필요한 때 집중해 써야 하는 것이다.”

-대전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데, 작품에 드러난 미래학적 비전들에 대전이라는 토양이 영향을 주었나.

“1978년 한 정부산하 연구소에 근무하게 된 것을 계기로 대전에 터를 잡았으나 미래학 비전을 정립시킬만한 토양은 아니다. 주어지는 과제가 주문 생산될 뿐, 변변한 과학철학 논의마저 진행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자녀 교육문제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하는 것이다.”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와 관련한 소송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영화는 나의 작품인 원작 ‘비명을 찾아서’가 지닌 참신성 (대체역사 기법의 활용) 의외성 (한반도가 아직 일본의 지배를 받는다는 가정) 주제 (조선인 주인공이 자기정체성을 찾음) 등을 빛바래게 했다고 판단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문학적 가치 훼손 외에 이 영화로 인해 앞으로 ‘비명을 찾아서’ 가 영화나 텔레비전 시리즈 등으로 제작될 수 없게 된 상업적 가치 상실에 대해서도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앞으로 유사한 경우를 위해 이번 재판의 판결이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 개입되지는 않는다. 웃으며 해결할 것이다.”

▼대전 생활 접고 서울 이사▼

-웃으며 해결한다는 뜻은.

“소송이란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찾아나가는 것일 뿐 감정의 문제는 아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서도 ‘파란 달 아래’의 영화화 논의를 인디컴과 진행 중이다. 인디컴측에서도 소송과 관련해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시나리오를 보내주는 등 성의를 보이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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