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신학전집 40권 펴낸 이종성 기독교학술원장

  • 입력 2001년 11월 29일 18시 54분


올해 팔순을 맞은 개신교 원로신학자 이종성 한국기독교학술원장이 최근 평생 동안 써온 신학 논문과 저서를 4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 전집으로 출간해 신학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930년대 이후 김재준 목사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여 ‘성경도 역사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을 때 박형룡 박사는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는 보수주의로 맞섰다. 이원장의 신학은 바로 한국 개신교 신학의 두 축을 형성해온 박형룡 대 김재준의 신학적 대립구도를 깨기 위해 그 중간지대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원장은 “박형룡 대 김재준의 신학적 대립은 교회사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독선적이고 지엽적이어서 한국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신학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두사람의 신학에 구애되지 않는 보다 넓고 다양한 신학적 분위기를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전집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과 6·25 등으로 이어지던 혼란기 동안 일본 도쿄신학대, 미국 풀러신학교와 루이빌신학교 등에서 공부하고 56년 귀국했다. 당시 교회는 박형룡과 김재준의 신학적 대립의 결과로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로 분열되고 신학교도 장신대와 한신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는 한경직 목사가 시무하던 영락교회의 부목사로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59년 장신대에서 총신대가 떨어져나가면서 예장은 다시 통합측과 합동측으로 분열된다. 이 원장은 “통합측과 합동측의 분열은 신학적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박형룡 박사의 장신대 총장 재임시 발생한 공금 유용사건이 발단이었지만 이후 미묘한 신학적 입장 차이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총신대를 세워 나간 박형룡 박사(합동측)는 계속 성경의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고집한 반면 한경직 목사(통합측)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기록 편집과정에서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 원장은 장신대에서 성서비평의 가능성을 열어둔 ‘열린 보수주의’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목회자 한경직의 신학적 분신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원장은 교회사 전체를 통해 “고대의 아우구스티누스, 중세의 안셀무스, 종교개혁기의 칼빈, 현대의 칼 바르트에 신학적인 친근성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100년전 대표적인 자유주의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이 ‘기독교는 고대 신플라톤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누스와 교부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를 비교 연구해 그 차이를 규명한 그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교 박사학위 논문은 60년대 미국 신학계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요즘 이 원장의 고민은 한국신학이 그동안 수입만 해왔지 수출할 게 없다는 데 있다. 한때 서남동 안병무 등의 민중신학이 서구 신학자의 관심을 끌었지만 결국 그리스도론이 없는, 개신교에 어울리지 않는 신학으로 평가됐다는 것.

그는 “45년간 내가 배운 신학은 백인사회와 그들의 인간이해에 기초한 3분의 1의 신학이었다”며 “앞으로 황인과 흑인의 입장을 합한 통전적 신학(統全的 神學·Wholistic Theology)을 확립해 세계에 내놓는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전집은 1∼14권 조직신학 대계(大系), 15∼18권 단행본집, 19∼27권 논문집, 28∼34권 설교집, 35∼38권 수상집, 39∼40권 외국어논문집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한국기독교학술원에서 나왔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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