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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2월 13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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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純) 국내파 화가인 문범(46·한성대 교수)이 세계 미술의 본거지인 뉴욕에 발탁되어 개인전을 갖게 됐다.
그는 17일부터 한 달 동안 뉴욕시 20번가 킴 포스터 갤러리에서 지난 1년 동안 준비해온 작품 20여점을 전시한다. 97년 문범이 이 갤러리에서 그룹전을 가졌을 때 작품을 눈여겨 본 갤러리측의 제의로 전시가 성사된 것.
출품작은 자동차 표면에 칠하는 끈적끈적한 도료(폴리 아크릴 우레탄)를 단색으로 화면에 칠한 뒤 그 중 한 부분을 에어컴프레서 등으로 바람을 일으켜 도료를 흐르게 만든 작품들이다.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색채를 화면에 담았습니다. 우리 시대 속도와 소비의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에어컴프레셔의 강한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도료 자국은 인체 내 아메바 운동으로도, 버려진 황무지로도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필연과 우연의 경계라고나 할까요….”
전시 제목은 ‘슬로우, 세임, 슬로우(Slow, Same, Slow)’. 초고속으로 변하는 현대인의 삶을 성찰하면서 이를 ‘느림의 미학’에서 살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같은 그의 작품은 뉴욕에서도 관심이 높다. 그가 전시 준비차 샘플로 가져간 작품이 벌써 고가로 팔린 것.
서울대 학부시절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그는 미술이론에 관한 번역서를 두 권 낼 정도로 현대미술 이론에 깊이 천착해왔다. 이를 미술작업으로 옮기느라 평면,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해왔으며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다소 난해하게 보이기도 한다. 현재의 자동차 도료 작업은 98년부터 해왔다.
“쉽게 이해되는 미술도 필요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이해할 수 있는 미술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전혀 시도해보지 못한 미술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올해 시카고 아트페어(5월)와 바젤 아트페어(6월) 등에도 출품하며, 주한 프랑스문화원의 주선으로 연말경 한 달 간 프랑스작가연합(AFAA)의 스튜디오 프로그램에도 참가한다.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