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대 '나만의 설' PC방-스키장으로

입력 2001-01-22 16:39수정 2009-09-2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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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정모씨(27·서울 서대문구 창천동)는 이번 설에 혼자 서울에 남는다. 가족이 일가친척이 있는 부산으로 귀성을 하지만 취업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남기로 했다.

“부모님들이야 친척들 만나면 나눌 이야기가 많겠지만 우리에겐 평소 왕래도 없는 사촌 형제들과 어색한 대화나 나눠야 하는 게 시간낭비예요.”

정씨는 연휴기간 중에 친구들과 어울리기로 했다. 떡국은 사먹고 잠은 친구들 집을 돌아 다니며 잘 예정이다.

10대와 20대 젊은층 사이에서 설날의 개념이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친족 모임’ 개념이 옅어지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연휴의 개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세태변화를 젊은이들의 사고에서 전통적 의미의 친족개념이 점차 사라져 가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실태〓서울 청량리의 인터넷 게임방 주인 유모씨(37)는 “명절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손님들이 30∼40% 가량 늘어난다”며 “점심식사를 마친 오후 1시경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컴퓨터게임과 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명절 연휴기간 중 인터넷 대화방은 문전성시. 대학생 민모씨(24)는 “명절에는 대화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즉석에서 장소와 시간을 정해 만나는 번개미팅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 대형 쇼핑몰 밀리오레 의류상점 점원 고명래씨(23)는 “명절을 낀 휴일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손님들이 들끓는 대목”이라며 “특히 설에는 10대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드는데 오전에 세뱃돈을 받고 와서 그런지 씀씀이도 크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모 어학원에서 영어수업을 듣는 회사원 김지은씨(25·회사원·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설에 고향 내려가는 사람 손 들어보라”는 강사의 질문에 손을 든 사람이 100여명 중 겨우 대여섯명에 이르지 않는 데 놀랐다. 수강생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의 고등학생 및 대학생. 이들은 대부분 친구들과 놀이동산이나 스키장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설날 연휴기간 중 귀성을 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로 돈벌이를 하는 청소년도 적지 않다. 대학생 김장환씨(20·서울 관악구 신림동)는 설 연휴 동안 경품이벤트 행사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다. 김씨는 “명절 연휴야말로 가난한 대학생들이 짭짤한 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며 “명절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시간당 5000원 정도 벌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경쟁이 치열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공부를 핑계로 할머니집에 가기를 피하는 고교생 아들을 꾸짖었다는 박모씨(50·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명절마다 아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가족들이 모여 다같이 조상을 섬기는 민족의 전통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끊어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대 장경섭(張慶燮·가족사회학)교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10대와 20대의 경우 고향개념이 희박하다”며 “아무리 핵가족화 했다 하더라도 명절에만큼은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유대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른들이 이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대 한경구(문화인류학)교수는 “중국에서는 춘절(春節)때, 미국도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때에는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느라 난리”라며 “종교인들의 성지순례에 비유할 정도로 뿌리와 가족을 중시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통이므로 젊은층도 그 의미를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명·최호원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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