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모든 음악은 고유의 가치지닌 문화"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42분


◇울산대 음대 채현경학장

국내에서는 생소한 ‘음악인류학’으로 미국 미시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4년 동안 서울대 등에 출강하다 올해 3월 일약 울산대 음악대학장이 된 채현경(蔡賢卿·47) 교수.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울산대 김영욱 석좌교수가 발탁한 인물이다.

그 배경은 채교수가 학생들에게 동양과 서양의 양쪽 문화를 편견 없이 가르쳐 학생들의 안목을 넓히고 이 음악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채 학장은 대학 졸업까지 한국에서 음악실기를 익힌 다음 미국에서 약 20년간 음악학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그가 서양음악만을 가르쳐줬던 한국을 떠나 펜실바니아대 하버드대 미시건대 등을 돌아다니며 깨달은 것은 서양음악만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배워 온 것이 서양음악뿐이었는데 그것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갈등을 견디기 어려워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후 한동안 음악공부를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그는 ‘서양음악’이 아닌 ‘세계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음악인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음악인류학은 19세기 말 독일에서 시작된 음악학이 전세계 오지를 떠돌며 현장을 연구하던 인류학과 만나 1960년 이후 형성된 것.채 교수가 음악인류학을 통해 배운 것은 음악과 문화의 연관성이다.“음악이란 단순히 소리 현상이 아니라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같은 바하라도 한국인인 제가 듣는 바하와 미국 사람이 듣는 바하는 다르다는 것이지요.”

특히 1980년대 초 유학 초창기에 접하게 된 존 블래킹의 연구 성과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블래킹은 아프리카 벤다족의 음악에 대한 현장연구를 통해 “모든 음악은 종족음악”임을 주장했던 것. 그의 이론에 감동받은 채교수는 블래킹의 저서인 ‘인간은 얼마나 음악적인가’를 번역해 출간(민음사)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채 교수 외에 음악인류학을 하는 학자가 거의 없는 형편. 그는 “이미 세계 음악학계에서는 서양음악 중심의 음악학을 비판하고 음악인류학이 음악학의 대세를 이뤄 가고 있다”고 역설한다. 1980년대 이후 세계 음악학계에서는 서양음악과 비서구음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음악학 학위과정에 음악인류학이 필수로 지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소리’라는 텍스트만을 중시했던 이전의 경향과 ‘배경(context)’을 중시하는 최근의 경향이 결합돼야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또 21세기를 위한 ‘대안음악학’으로 ‘통합음악학’을 제안한다.

통합음악학이란 자신의 경험과 교육으로 인한 음악적 편견을 버리고 ‘대화적 방법’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음악의 텍스트와 문화적 배경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음악의 우월성을 동경하며 우리 음악과의 이분법적 대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현실에서 채 교수의 역할이 기대된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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