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외 자유화' 6개월 다품종 전문화 바람

  • 입력 2000년 11월 13일 19시 33분


11일 오전 9시.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지구과학을 가르치던 김모교사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 3명을 흔들어 깨웠다. 김교사는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부터 자는 것은 너무 하지 "고 타일렀으나 학생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을 듣는 순간 꾸중을 포기했다. 이들은 수능시험을 목전에 두고 한달 과정으로 자정부터 새벽4시까지 철야과외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 철야과외의 실상 ▼

이날 만난 학생 신모군(18)은 "방과 후 곧바로 학원에 가 밤12시까지 국어 영어 수학 등 중요과목 과외를 받은 뒤 사회탐구 과목의 철야과외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능시험이 쉽게 출제되면서부터 주요과목은 난이도가 떨어져 변별력을 잃은 반면 사회탐구 같은 과목이 당락을 결정하기 때문에 학교수업을 아예 포기하는 이같은 '기현상'이 벌어졌던 것. 이 학생은 방과후 다니는 두 학원에 월 30만원씩 내고 있었다.

서울 강남 H고의 경우 3학년의 한 학급 40명 가운데 30명 가량이 방과후 학원과외를 받고 있었다. 대부분 밤 12시 또는 새벽 1시까지 학원가를 전전하지만 수능시험 막바지에 이르면서 사회탐구 또는 과학탐구 영역을 중심으로 밤을 꼴깍 새며 철야과외를 한 뒤 등교하는 학생이 한반에 3∼4명씩 됐던 것. 김교사는 "이런 학생들은 하루 종일 엎드려 있지만 고3 이라는 입장을 이해하면 꾸짖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 다양한 과외 상품 ▼

지난 4월 과외자유화 이후 학원과외가 다양한 형태로 번지고 있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밀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은 모든 교육이 학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학원가는 다양한 상품개발을 통해 학생들 유치에 바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내신성적 향상을 위해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대비하는 '내신전문 학원'. 서울 강남의 한 학원은 인근 중고교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만을 대비하는 강좌를 별도로 운영중이다. 이 학원은 최근 수년간 과목별 출제경향과 기출문제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시험을 앞두고 이를 집중강의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경기 성남시의 한 중학교 교사는 "지난 중간고사때 학교 근처의 학원에서 최근 5년치 출제문제를 묶어 학생들에게 비싸게 팔다가 적발돼 공식항의하기도 했다"며 "특히 내신성적이 고교입시에 주요변수가 되면서 학원가에서 이같은 일들이 빈번해졌다"고 밝혔다.

그밖에 경시대회 붐이 일면 경시대회 전문강좌를 만들고 논술비중이 높아지면 논술전문강좌를 여는 등 강남지역 대형학원들의 상품개발 노력은 대단하다.

5년 경력의 한 보습학원 강사는 "요즘 과외는 과거 대학생 아르바이트 중심의 1:1 방식(가정교사)이 점점 사라지고 학원을 중심으로 다품종 전문화 소수정예화 하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한 뒤 "수준과 요구사항이 비슷한 학생 3∼4명만 모이면 학원에서 선생님을 붙여준다"고 말했다.

▼ 교사들의 절망감 ▼

이같은 학원위주의 교육 세태를 지켜보는 교사들의 절망감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

고3을 가르치는 서울 강북 M여고의 한 교사는 "요즘 국어 영어 수학 등이 쉬워졌기 때문에 암기과목에서 실수를 덜 한 사람이 고득점을 하게 된다. 따라서 전학년 1등을 하는 학생도 학원과외를 받는다"고 소개했다. 시험에 나올 것만 암기하도록 가르치는 학원공부에 치중하는 마당에 탐구력 향상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는 것.

"걸핏하면 학원에서 그렇게 안 배웠다고 따지고 숙제도 학원강사가 대신 해줄 정도니 학교는 말 그대로 내신평가를 위한 허수아비"라는 게 교사들의 뼈아픈 실토다.

강남의 또 한 교사는 "과외도 과목당 200만원짜리부터 10만원짜리까지 천차만별이어서 학생들 사이의 상대적 박탈감도 의외로 크다"고 덧붙였다.

<허문명 이헌진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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