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한국의 40대]마지막 아날로그 세대

  • 입력 2000년 10월 3일 19시 15분


유통업체 팀장으로 근무하는 김모씨(42)는 아침마다 영어학원에서 진땀을 흘린다. 그는 어학과 컴퓨터실력으로 무장된 후배들을 볼 때마다 긴장한다.

“토익 850점이 기본이더군요. 학원까지 다녀가며 간신히 600점을 넘은 제 또래들은 신입사원을 볼 때마다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50대처럼 지시만 하고 팔짱을 끼고 있을 처지도 아니니 기를 쓰고 쫓아갈 수밖에 없어요.”

디지털시대의 도래 등 급격한 변화 속에 우리 사회의 중추인 40대가 흔들리고 있다. 많은 직장에선 벌써부터 구세대로 몰리고 있다. 새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고 지금까지 배워온 일은 시대에 맞지 않다.

직장뿐만이 아니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한국의 40대는 어느 세대보다 고달프다. 최근 통계청이 밝힌 ‘99인구동태조사’에 따르면 40대에 사망하는 한국인 남자의 비율은 40대 여자보다 3배나 많았다. 이는 일본 미국 영국보다 1.5배나 높은 수치.

40대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은 젊은 세대와의 디지털 격차. 대학시절 컴퓨터를 다뤄볼 기회가 없었던 이들의 컴퓨터실력은 겨우 문서를 작성하거나 메일을 체크하는 수준. 인터넷 정보검색 홈페이지 만들기 등을 자유자재로 하는 20, 30대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대기업 기획파트에서 일하는 송모씨(43). 실력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들이 치받고 올라오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직장분위기를 실감한다.

그는 “질펀한 술자리로 리더십을 확인하던 시대는 끝났다. 일은 많아지고 사람은 줄어 다들 지쳐있는데 무조건 술만 권하면 욕먹는다”며 “더 이상 MBA(Management By Alcohol)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일사불란 상명하복 경험중시 충성심 애사심 등이 덕목이었지만 요즘은 변화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스스로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부하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씨는 요즘 최신가요 테이프를 차에 비치해 놓고 수시로 듣는다. 최근 연습하는 노래는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 그는 젊은이와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요즘 유행하는 신세대 노래는 물론이고 삼행시 한두 개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견 무역업체 간부 이모씨(43)는 “50대 이상은 부동산으로 상당한 재미를 봤고 30대는 그 나름대로 첨단 재테크기법을 통해 돈을 벌었는데 우리 세대는 그게 거의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 벤처투자에 뛰어든 동료 친구들이 모두 실패하는 것을 본 뒤로 지금은 착실하게 보험과 적금만 붓고 있다.

자기 능력 개발을 위해 대학원에 다니거나 과감히 전직을 택하고 경험을 살려 책을 쓰는 40대도 많다.

삼성카드 부장 최모씨(44)는 과감히 전직을 하면서 일본어에 승부를 건 사례. 삼성카드로 직장을 옮기면서 일본 근무를 자원, 탄탄한 일본어 실력을 쌓은 그는 지방대 출신이면서도 명문대 출신 동료들을 제치고 확고한 사내 위치를 구축했다.

중소기업 중간간부 이모씨(44). 수시로 인터넷에 들어가 얘깃거리를 발굴하고 다음날 젊은 부하들과 이를 주제로 얘기를 나누며 세대차를 극복하려 애쓴다.

삼성인력개발원 신태균부장등 전문가들은 변화의 시대에 걸맞은 중간간부 리더십으로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는 등 조직의 변화를 주도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돼 전문성으로 조직을 장악하며 △상의하달과 하의상달을 아우르는 전방위조직관리와 함께 부하직원의 마음관리에도 신경을 쓰는 관리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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