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음악축제]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

  • 입력 2000년 8월 16일 18시 56분


한없이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밤 9시에 시작하기로 한 오페라는 이미 1시간 이상 지체되고 있었다. 원형경기장인 아레나 바닥에 지정 좌석이 있는 사람들은 비를 피하고 있었지만, 스탠드의 관객들은 낮부터 잡았던 자리를 포기할 수 없어 우의를 입은 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8시 50분까지 멀쩡하던 하늘에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푸치니의 ‘투란도트’였다. 투란도트공주역에 소프라노 에바 마르톤, 류에 소프라노 카티아 리치아렐리, 칼라프왕자에 테너 니콜라 마르티누치가 나오기로 하였으니, 실로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호화 캐스팅이었다. 그러나 비가 그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 골목의 카페에서 비를 피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5분 후 비가 그칠 예정이니, 10분 후에 공연이 시작된다”는 놀라운(?)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골목마다 식당마다 사람들이 뛰어나와 아레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밤늦게 시작된 ‘투란도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시차와 여독에 비까지 맞은 필자는 너무 피곤하여 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줄기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청아한 음성은 마르티누치의 아리아였다. ‘류여, 울지 마오’의 테너 음성이 개인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하늘에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새벽 1시였다.

야외 오페라 축제의 대명사로 꼽히는 베로나 페스티벌은 이탈리아 북부의 아름다운 고도(古都) 베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규모의 오페라 축제. 고대 로마시대의 거대한 원형 경기장인 ‘아레나’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는데, 1913년부터 이곳에서 매년 여름밤 두 달동안 야외 오페라가 개최된다.

명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이 아레나 옆을 지나다가 ‘저기서 오페라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들어가보았는데 의외로 음향이 훌륭해 놀란 나머지 축제를 착안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말대로 이곳은 2만5000명이나 들어가는 큰 야외공간인데도 가수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가 놀랄만큼 선명하게 들린다. 반대편 객석의 관객들이 밝혀든 촛불이 반짝거리는 모습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이 야외공간의 분위기를 꿈결같은 낭만으로 장식한다. 이곳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서유럽 데뷔를 했었고 마리오 델 모나코, 프랑코 코렐리 등 명테너들도 단골 스타였다. 금년에는 베르디의 ‘아이다’, ‘나부코’, ‘운명의 힘’, ‘라 트라비아타’가 매일 번갈아 올려진다.

박종호(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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