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크로키전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하자 주최측인 아트빌미술방송국의 여성홍보담당자는 이렇게 충고를 해줬다.
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KH 아트빌 조형연구소. 참가자는 전문작가 5명을 포함해서 약 30명. 앳된 얼굴의 여자가 샌들을 벗고 손목시계를 푼다. 마지막으로 가운을 벗고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선다. 가로 세로 열걸음도 채 안되는 좁은 공간에 침이라도 삼키면 들릴 듯한 침묵이 흐른다. 눈길이 그녀의 몸을 훑는다.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오라는 말의 의미가 ‘불현듯’ 깨우쳐진다.
그녀는 작업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처음 누드를 그리는 사람은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어요. 음흉해요. 대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달라지지만 끝날 때까지도 그 눈빛이 안 변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나가달라고 부탁해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눈길이 ‘특정’ 부위에 멈춰 있을 시간이 없다. 모델이 금방금방 자세를 바꾼다. 순간을 포착해 그리는 크로키에서는 한 자세에서 길어야 3분 이상을 끄는 경우가 없다. 어깨선 등선 허리선 등의 흐름을 좇느라 정신이 없다. 몸이 처음 봤을 때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누드 모델은 벗은 여자가 아니라 짐승, 즉 어떤 ‘원초적인 존재’예요. 누드란 본래 옷을 벗은 것이 아니라 입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즉 인간의 원초적인 상태는 누드(nude)이고 옷을 입은 것을 코스튬(costume)이라고 따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죠. 전 일할 때 일부러 화장은 하지 않아요. 발톱이나 손톱에 매니큐어도 칠하지 않죠. 여자로 보이지 않으려고 연출을 하는 거죠”
작업을 끝내고 ‘코스튬’의 세계로 돌아와서 옷을 차려입은 그녀를 봤을 때 약간 실망감이 든다. 그림을 그리면서 본 그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녀의 말처럼 그림을 그리는 어느 순간 한 여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몸을 가진 한 짐승을 쫓고 있었는지 모른다.
공무원 발령을 앞둔 한 참가자(31)는 “사실 호기심 때문에 찾았는데 막상 누드그림을 그리다 보니 나체의 여자가 출연하는 영화나 연극을 볼 때와는 달리 남성적인 충동이 빠른 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트빌미술방송국의 진형민 부사장은 “공개적인 누드크로키전을 기획했을 때는 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 걱정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실제로 해보니까 누드크로키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이 크게 잘못됐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