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첫날 표정]예상보다 큰혼란은 없어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36분


우려했던 ‘의료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의사들의 집단폐업 첫날인 20일 병원의 진료 거부에 따른 마찰과 폭력사태, 사망사고 등으로 전국이 엄청난 의료대란에 빠질 것으로 우려됐으나 사전에 폐업사실이 알려진 탓인지 예상만큼 큰 혼란은 없었다.

대형 종합병원 접수창구 등은 평소보다 찾는 환자가 적어 한산했던 반면 국공립병원과 보건소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일부 병원에서는 진료를 거부해 환자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대형 종합병원▼

○…700여명 전공의가 진료 거부에 들어간 서울대병원은 환자가 평소보다 적게 찾은데다 250여명의 의대 교수가 총동원돼 진료를 하는 바람에 별다른 진료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

이날 내과 외과 피부과 정형외과 등에 몰려든 외래환자는 평소 2000여명의 4분의 1인 500여명에 불과했다. 응급실의 한 간호사(35)는 “평소 응급실은 하루 종일 복도까지 환자들로 꽉 차고 진료 환자도 200여명에 달하는데 오늘은 침대도 많이 비어 있고 응급환자도 30여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레지던트와 인턴 4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한 삼성서울병원도 평소보다 한산한 분위기 속에 큰 진료차질은 없었으나 상태가 위급한 응급환자를 제외한 외래환자를 모두 돌려보내 환자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이 병원에선 평소 70∼80건의 수술이 이뤄졌으나 이날은 4건의 수술만이 이뤄졌으며 초진 환자는 지난 주말부터 일절 받지 않아 평소 하루 6000여명의 외래환자들이 찾던 병원은 재진 환자를 중심으로 절반 정도만 찾아왔다.

○…전공 수련의 280여명이 사표를 내 교수들이 대신 진료를 보고 있는 대전 중구 대사동 충남대병원 응급실도 평소보다 한가한 모습을 보인 가운데 환자들은 “베테랑 의사들이 진료해 오히려 안심이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충북 청주성모병원의 경우 이날 23건의 수술을 예정대로 실시했으며 분야별 전문의 10여명이 응급실에 배치돼 병원을 찾은 외래환자 200여명 가운데 절반 가량을 진료했다.

▼국공립병원 및 보건소▼

○…서울 국립의료원은 일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나 119구조대가 실어온 환자 등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양영화(梁永華·60)사무국장은 “예전에는 외래환자의 수가 하루 평균 1400여명이었으나 오늘은 초진환자만 30% 이상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모씨는 “오전 9시경 갑자기 복부 통증이 심해 강남의 S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했으나 입원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국립의료원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원자력병원은 암치료 전문병원이란 특성 때문인지 큰 혼잡을 빚지는 않았으나 환자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해 직원들이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통원치료를 하는 암환자들은 전화를 걸어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 날인데 주사를 늦춰도 되느냐”고 문의했으며 일부 환자는 “내가 죽으면 너희 ×들이 책임지겠느냐”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서울시내 각 보건소에는 환자들이 평소보다 크게 늘어났으나 우려했던 ‘진료 폭증’ 사태는 발생하지 않아다.

영등포구보건소의 경우 이날 하루 동안 평소보다 30% 가량 늘어난 280여명의 환자가 몰렸다. 한 관계자는 “폐업이 계속될 경우 환자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각종 약품 등을 추가로 비치했다”고 말했다.

노원구보건소는 평소보다 30% 늘어난 170여명의 환자들이 찾는 바람에 진료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등 혼잡을 빚었다.

▼진료 거부▼

○…이날 오전 폐업 사실을 모른 채 충남 천안에서 서울 한강성심병원을 찾은 서모씨(61)는 “6년째 만성신부전증 때문에 매달 두 차례씩 검사를 받고 약을 타갔는데 오늘은 진찰은 못 받고 약만 겨우 탈 수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오전 3시50분경 서울 강남구 올림픽대로상에서 사고를 당한 이진호씨(37·회사원·경기 광주시) 부부는 인근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할 수 없다고 해 사고 발생 40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입원이 되지 않아 이날 오전 9시경 집으로 돌아간 이씨는 “입원 치료를 받고 싶어 경기 광주 성남 하남시 등의 병원 20여곳에 전화를 했으나 거부당했다”며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의사들의 파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 움직임▼

의사들의 폐업 첫날인 20일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동본부(시민운동본부)’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 YMCA 앞에서 ‘의사회 폐업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함과 동시에 의약분업 연기론을 제기한 한나라당을 항의 방문했다. 또한 김재정(金在正)대한의사협회장과 신상진(申相珍)의권쟁취투쟁위원장을 의료법 위반과 헌법에 보장된 국민건강권과 행복권 박탈을 이유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시민운동본부는 의료계 폐업에 따른 집단폐업피해신고센터(02-757-3078)를 열고 피해환자 모임을 만들어 손해배상청구운동을 전개할 방침. 이석연(李石淵)공동대표는 “시민사회단체 소속 변호사 100여명을 총동원, 폐업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지원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한간호협회(회장 김화중·金花中)는 20일 ‘의료계 폐업에 즈음한 간호계 입장’을 통해 “이번 폐업사태가 합리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며 “간호사들은 주변 상황에 동요되지 말고 정의롭고 순수한 마음으로 각자 본분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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