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양아버지의 사연]양부모姓 허용만 학수고대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이혼과 재혼의 급증으로 아버지와 자식의 성(姓)이 다른 가정이 양산되고 있다. 대개는 어머니가 친아버지와 이혼하고 양부와 재혼한 경우. 부모가 이혼한 경우 친부가 친권을 포기하면 자녀는 어머니를 따라 양부와 살게된다.

문제는 새로 결합된 가정에서 부자(父子)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서로의 성이 틀려 심적 갈등이 생길 소지가 많다는 점이다. 이같은 현상은 현행 민법이 양자녀는 양부모 대신 친부모와의 가족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양부모의 성을 따를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수한 가정이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법무부가 입양된 양자녀도 양부모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민법의 새 개정안을 마련했다는 보도(본보 6월10일자 A25,A27면)가 나가자 본보 독자 B씨(38)는 E메일로 자신의 사연을 보내왔다.

“양부모 성을 따를 수 있다는 기사를 보는 순간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전 작년 3월에 결혼했습니다. 제 아내는 재혼이고 전 초혼입니다.

문제는 제 아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를 제가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 네살인데 두살때부터 제가 키웠기 때문에 그애는 제가 친아빠인 줄 알고 있고 저 또한 친딸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성인 B로 고칠 수가 없어서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애가 조만간 글을 깨우치면 제가 친아빠가 아닌줄 알고 삐뚤어지는 것은 아닐까? 친아빠에게 간다고 보채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고….

애를 데리고 온 동기도 아내의 전 남편집에서 애를 데려가지 않으면 고아원에 보낸다고 해서였습니다. 아이의 성은 Y입니다. 어떻게 해야 B로 바꿀 수 있는지요. 법은 언제쯤 시행 되는지,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는 기관은 어디인지…. ”

법무부 관계자는 “이혼과 재혼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B씨와 같은 경우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같은 문제 때문에 입양이 기피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B씨가 밤잠을 설치지 않기 위해서는 법무부의 새 개정안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국회가 15대때처럼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며 민생법안 처리를 미루지 않을까 하는 점. 그럴 경우 B씨와 같은 가정의 ‘아픔’은 무한정 연장될 수밖에 없다.

법무부는 97년 11월 민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15대 국회는 올해 5월29일 임기를 마칠 때까지 법안처리를 하지 않아 당시 개정안은 자동 폐기됐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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