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훼손 위험수위/문제점-대책 긴급점검]

  • 입력 2000년 5월 15일 18시 51분


《이번 풍납토성 유적 훼손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보존의 슬기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역사의 비밀을 증언하는 문화재를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사유재산보호라는 자본주의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풍납토성 유적의 현황과 보존실태 및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현황-피해상황▼

▽피해 상황〓이번에 유적지가 훼손된 경당연립 재건축지역 유적은 전체 1200평의 유적중 120평 가량. 4t트럭 한 대 분량의 흙으로 덮인 이 지역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는 약 일주일의 작업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조사발굴팀의 예상이다.

복구현장을 살펴본 황평우(黃平雨·40) 문화재관리청 행정모니터역은 “복구작업은 유구를 손상하지 않도록 수작업으로 해야 하므로 복구비용도 약 3000만∼4000만원 정도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미 훼손된 유적 중 일부는 복구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 훼손된 7개 유구 중 흙으로만 덮인 4곳은 흙을 걷어내기만 하면 되지만 다른 3곳은 일부가 손상돼 완전 복구가 어렵다는 것.

▽풍납토성의 현황〓한강변에 자리잡은 풍납토성의 규모는 무척 방대하다. 성벽의 둘레만 4㎞에 이르며 성 내부 면적은 44만평에 이른다.

풍납토성의 복원을 위해서는 현재 2㎞가량 남은 성벽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궐과 종묘 등이 들어섰을 성 내부의 유적들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

풍납토성 일대가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일제시대. 그것이 1961년 사적 제11호로 재지정되면서 성벽만 남기고 내부 토지는 민간에게 불하됐고 성벽부분은 조금씩 사유화됐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밭으로 쓰이던 이곳에 점차 단독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80년대 집중침수지역이 되면서 정부가 보상차원에서 잇달아 재개발을 허용했고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지금까지 이 지역에는 13개 단지 41개 동의 아파트가 들어섰고 공사가 진행중이거나 심의중인 아파트만도 경당연립을 포함해 5개 단지 24개 동에 이른다. 이로 인해 성곽 내부에는 무려 1800여채의 가옥에 4만1000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그러나 왕궁터 등의 유적들이 대부분 지하 4∼5m 아래에 놓여있기 때문에 3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경우 반드시 발굴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재원마련 난관/정부-서울시 보상비 마련 서로 떠넘겨▼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정확한 실사 결과는 아니지만 44만평의 토지를 매입하고 4만여명의 주민을 이주시키려면 최소한 5조원이 넘는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경당연립 재건축부지 1200평만 하더라도 주민들의 보상조건은 730억원에 이른다. 조합원 98가구와 일반분양자 135가구를 합쳐 233가구에 대한 토지보상비와 이주비 및 피해보상금으로 660억원, 시공업자에 대한 보상금 100억원 등을 합친 액수다.

송파구청측은 이보다 적은 300억원 가량을 산정하고 있으며 문화재청도 250억∼400억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아직 절반밖에 매입이 끝나지 않은 나머지 성곽 매입에만도 300억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어디서 그 돈을 마련하나〓주민들은 “토지보상을 해주든지 재개발공사를 진행하게 해주든지 결정을 신속히 내려줘야 재산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경당연립 재건축지역 유적에 대한 보존 여부는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할 문제. 하지만 현재 풍납토성 유적의 중요성이나 여론 때문에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결정이 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문제의 관건인 토지매입 비용은 정부와 서울시 간에 탁구공처럼 오가기만 할 뿐 뾰족한 대책 마련은 요원한 상태다.

1988년 서울시와 정부가 맺은 양해각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 당시 정부는 서울시에 담배소비세를 넘겨주고 대신 풍납토성의 보존 및 발굴은 서울시가 책임지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의 박영복(朴永福)문화유산국장은 “지금까지 재원 조달 문제를 놓고 기획예산처 서울시와 논의를 해왔으나 아직 진전이 없는 상태다. 기획예산처는 보존 및 보상 비용을 대줄 수 없다고 밝혀왔다. 현재로선 서울시에 비용을 지원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특단의 대책 필요성〓하지만 필요한 재원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범정부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히 당장 토지보상 등의 조치를 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지하의 유적이 파괴되지 않도록 이 지역에 대해서는 개발제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형구(李亨求) 선문대 교수는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 풍납토성 내부에 더 이상의 재개발 건축공사가 없도록 막아야 한다”며 이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대통령의 특단의 조치뿐”이라고 강조했다.

열린문화운동과 문화연대 민족예술인총연맹(민예총) 등 15개 시민 학술단체로 구성된 ‘풍납토성 보존 국민연대 준비위’도 15일 성명을 발표하고 풍납토성 보존을 위한 정부 차원의 장단기 대책을 즉각 마련하고 주민보상문제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고 촉구했다.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청와대에 앞서 기획예산처는 물론 총리실에 중재를 요청해놓고 있으며 지속적인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이광표·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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