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어떻게 해야 옳은가

  • 입력 2000년 4월 10일 19시 43분


세계 정신분석학계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를 계승하는 방법론과 내용을 둘러싸고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압도적 주류라 할 수 있는 ‘국제정신분석학회(IPA)’로 개인의 무의식 분석에 초점을 맞추는 미국 중심의 흐름으며 이들은 ‘프로이디언’을 자처한다. 다른 하나는 프로이트의 핵심이론을 계승하면서도 칼 융(1875∼1961), 특히 자크 라캉(1901∼1981)의 이론을 접목해 사회구조의 문제와 연관지어 정신을 분석하려는 프랑스 중심의 ‘라카니언’이다. ‘프로이디언’ 측은 주로 정신분석학자 양성과정을 들어 ‘날림’이라고 라캉 계열을 비판한다. 라캉 계열은 미국 학자들이 사회문제를 도외시한 채 개인의 문제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 주에는 우연히도 양 계열의 저명한 두 학자가 동시에 방한했다.

라캉의 제자인 프랑스 파리8대학 피에르 스크리아빈교수는 ‘라캉과 현대정신분석학회’(회장 김종주신경정신과전문의)와 주한 프랑스 문화원의 초청으로 방한해 ‘우울증과 향락’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다. 한편 미국 정신분석학 계열인 ‘한국정신분석학회’(회장 정도언 서울대 의대교수)의 초청으로 방한한 미국 뉴욕대 해럴드 블럼교수는 국내 정신과전문의들을 대상으로 ‘교육분석’을 지도했다. 두 학자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세계 정신분석학계에서 라캉의 위상에 관한 대립된 견해를 소개한다.스

스크리아빈교수는 라캉의 프로이트 계승 문제에 관해 공개강연을 했고 블럼교수의 ‘교육분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라카니언' 佛 피에르 스크리아빈 교수

"사회현상과 같이 분석해야 정확"

-라캉은 세계 정신분석학계에서 이단자로 낙인 찍혀 파문을 당했다. 최근 라캉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정신분석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은 많은 부분 라캉의 덕분이다. 미국식의 정신분석이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자아의 심리학’에 매몰돼 비판을 받을 때 라캉은 프로이트를 계승해 정신분석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는 논리와 방법을 개발했다. 그 독창성 때문에 1953년 국제정신분석학회(IPA)와 결별하게 된 후 독자적인 강의를 시작해 호응을 받으며 많은 정신분석가들을 길러냈다.”

-한국에서 라캉은 정신분석가라기보다는 주로 문화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인간 정신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와 연관시킨 라캉의 이론은 다방면에 적용될 수 있지만 그의 모든 성과는 임상의로서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나도 라캉의 말년에 6년간 정신분석을 배운 뒤 지금까지도 임상작업을 통한 교육과 검증을 계속 받고 있다. 임상에서의 작업을 소홀히 하고는 라캉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세계 정신분석학계에서 고립됐던 라캉의 현재 위상은?

“그 고립은 지적 고립이라기보다는 제도적 고립이었다. 프로이트 이론을 망각하고 형식에 얽매였던 미국식 심리학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에게 개방했던 라캉의 강의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그가 파리8대학에 정신분석학과를 창설한 후 이제 라캉 계열의 학회는 전세계에 확산돼 있다. 그 수준이나 역량은 라캉을 파문했던 IPA에 뒤지지 않는다. 98년부터는 IPA에서도 라캉 계열 학자들이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스크리아빈교수는 특강에서 “라캉은 인간의 의식에서 억압된 의미는 여러 가지 ‘증상’으로 표출되며 증상에는 ‘메시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라캉은 무의식의 구조 은유 환유 등의 법칙을 통해 ‘무의식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공식화했다”면서 “‘분석 가능한 무의식적 지식’과 ‘환원불가능한 무의식’을 구분했다”고 말했다.

▼'프로이디언' 美 해럴드 블럼 교수

"개인 무의식 중요…라캉이론은 잘못"

-며칠전 라캉의 제자인 스크리아빈교수를 만났다. 정신분석학계에서 파문당했던 라캉의 후예들이 이제 학계에서 주류와 맞설 만큼 주목을 받는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도 몇몇 대학의 문학 철학 생물학과가 라캉을 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계의 경우 수천명에 이르는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중 라캉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은 1%도 안된다.”

-라캉이 미국 정신분석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신분석은 사람의 정신을 다룬다. 매우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정신분석가가 되는 데는 오랜 수련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고되다. 기본적으로 4년 이상 교육을 받으며 일주일에 4∼5회 ‘정신분석’ 훈련을 받고, 그 후에도 임상에서 환자를 돌보며 ‘교육분석’을 받아야 한다. 나도 58년 이후 연구 실험 발표 점검 등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0년 역사의 한국정신분석학회에 아직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공인한 정신분석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만 봐도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캉은 이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정신분석가를 양산했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근본적인 차이는?

“라캉의 공헌은 언어학적 측면에서 정신분석의 기법을 발전시킨 점이겠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캉의 언어관 자체도 문제가 많다. 또한 라캉은 ‘남근’의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창안 후 100여 년 동안 정신분석은 많은 성과를 축적해 왔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섹스’의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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