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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4월 7일 20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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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관한 책은 국내에도 몇 권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다르다.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그림‘벨사살 왕의 연희’ (1639)을 집중적으로 파고 든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렘브란트의 미술세계로 안내한다.
렘브란트의 다른 명작도 많은데 하필 왜 이 그림인가.
고대 바빌로니아 왕이었던 벨사살은 부귀와 사치 속에서 오만함을 감추지 못했던 인물. 어느날 저녁, 벨사살은 궁정에서 연희를 열었다. 연희 도중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하나의 손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곤 벽에 글씨를 새기기 시작했다. ‘당신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황금빛 글씨는 이글거리며 타올랐고, 다음날 벨사살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렘브란트는 왜 이 비극적 인물의 최후를 그린 것일까.
저자는 이를 추적하면서 렘브란트의 삶과 예술을 읽어나간다. 이 작품야말로 렘브란트 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섬광처럼 빛나는 글씨는 주변의 어두운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며 비극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렘브란트는 냉혹한 빛과 어둠으로 화폭을 갈라 놓았다. 그 빛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다. 명암 대비는 삶과 죽음의 가파른 교차점이다. ”
‘명암 대조’라는 기법을 통해 인간의 번뇌와 갈등을 표현하려 했던 렘브란트. 벨사살 최후의 순간은 이같은 의도에 딱 맞아 떨어졌고 그래서 이 작품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미학적 접근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의미도 탐색한다. 17세기 중반은 네덜란드가 전례없는 사치에 빠져 있을 때. 튤립 열풍이 그 한 예다. 가장 인기좋은 튤립 한 뿌리는 말 두필에 마차 마부까지 묶어서 거래될 정도였다. 꽃의 향이 아니라 돈의 냄새였다. 렘브란트는 그 사치와 오만을 경고하기 위해 자신의 그림에 벨사살을 등장시킨 것이다.
눈길도 주지 않았던 작품 ‘벨사살 왕의 연희’에 감춰진 렘브란트 미술의 예술정신과 미학. 그 발견의 기쁨이 만만치 않다. 노성두 옮김. 111쪽, 65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