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역사' 유럽역사에 비춰본 女權의 저항과 좌절사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여성의 역사를 통해 유럽의 역사를 읽는다.

여성의 삶과 인권이 어떻게 억압 받아왔고 여성은 그 억압에 대해 어떻게 저항하고 또 어떻게 좌절해왔는지.

저자는 핀란드 출신의 독일 역사학자. 그는 기독교 창조신화 속에 나타난 여성상, 성모 마리아와 여성 숭배의 관계, 중세시대의 여성 차별, 절대주의 시대 궁정 여성들의 일상, 프랑스 혁명기 자유를 향한 여성들의 외침 등 고대부터 19세기 말까지 유럽 여성들의 힘겨웠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인간 중심을 외쳤던 중세말 근대 초기 인문주의 계몽주의가 오히려 여성을 더 억압했다는 점. 인문주의적인 각성은 새롭고 풍성한 유럽적 지성을 만들었지만 여성만은 철저히 배제했다고 말한다. 마녀사냥이 인문주의의 절정기에 나타났다는 점, 당시 인문주의의 세례를 받았다는 시인들이 여성 애인들을 희롱한 사실을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녔다는 점 등을 그 예로 든다. 유럽 인문주의는 여성관에 있어서 만큼은 모순에 가득찼다는 것이다. 그 이전 중세 초기 수도원이란 공간이 차라리 여성에게 독립적인 삶을 제공했다고 말할 정도다.

이는 시대가 흐르고 문화가 발전한다고 해서 여성의 인권문제가 저절로 개선됐던 것이 아님을 뜻한다. 프랑스 혁명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 프랑스에선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자 여성 5명 이상의 회합을 금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저자는 “여성들의 희생과 눈물이 없었다면 인류는 한세대도 존속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견해를 소리높여 주장하지 않는다. 분노하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판단의 독자의 몫이다. 안미현 옮김. 391쪽, 8000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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