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영화 '철도원' 원작자 '아사다 지로' 서면 인터뷰]

  • 입력 2000년 2월 8일 20시 19분


야쿠자 출신의 일본인 작가 아사다 지로의 맑고 순수한 영혼에 얽힌 이야기가 국내 서점가에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의 몰락으로 한 때 야쿠자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던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 중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장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인기작가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는 1997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그의 소설집 ‘철도원’이 지난해 10월 번역 출간된 이후 각종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상위에 올랐으며 그 여세를 몰아 장편 ‘천국까지 100마일’ ‘프리즌 호텔’과 소설집 ‘은빛 비’ 등이 잇따라 소개됐다. 한국에 다녀간 적이 없고 일본에서도 좀처럼 매스콤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그를 소속 에이전트인 슈에이샤(集英社)를 통해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 소감은….

“일본을 무대로 한 작품이 민족과 국경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깊다. 소설을 쓸때,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표정을 하며 책장을 넘길까를 항상 생각한다.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한국 독자가 나의 생각을 글자로 읽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몰락을 겪고 야쿠자 생활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성장환경이 문학에 미친 영향은….

“우리 집은 일본의 전형적인 무사 집안이었고 하인들에게 도련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던 것이 당대에 몰락을 겪은 것이다. 상실감과 충격 속에 방황을 겪었고, 야쿠자 생활과 자위대 입대 등 특이한 경험을 했다. 다른 작가들이 대학 강의실에서 이론 수업을 받고 있을 때 나는 힘들고 굴곡많은 세계를 방황했다. 이런 경험들은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은빛 비’ 등에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잊은 적이 없다. 고난은 나의 작품에 있어서 일종의 원점(原点)을 이룬다.”

-‘철도원’을 비롯한 모든 작품이 불행에 처한 인간의 선의를 치밀하게 그려내며, 따뜻한 눈물의 힘을 강조한다는 평이다. 인간의 선함을 믿는가.

“어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악의로 똘똘 뭉쳐 계획적으로 악을 실천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과연 그런 인물들이 얼마나 존재하는 것일까. 참된 의미에서 인간에게 악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악당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도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무언가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주변에 대해 갖는 선의란 작품속의 허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진실이라고 믿는다.”

-작품속에 소외된 인물과 사회적 약자가 자주 등장한다. 재일 한국인도 일본 사회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작품속에 등장시킨 일이 있는가.

“어려서부터 한국인, 조선인 친구가 많았다. 그중 일부는 요즘도 만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일본인 작가가 재일 한국인을 등장시켜 그들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최근 아쿠다가와상을 받은 현월 유미리 등 재일 한국인 작가들의 활동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주목할만한 작가들이다. 내 자신 평론가가 아니므로 동료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평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작품을 읽을 때 특별히 한국인의 작품이라고 의식해 본 일은 없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다룬 소설들이라고 느꼈다.”

-원작자로서 영화 ‘철도원’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가.

“매우 아름다운 영화다. 여러 사람과 여러번 이 영화를 보러 갔고,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원작자가 아닌 감독의 것이다.”

-한국에서는 ‘달콤한 인정과 눈물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는 평과 최근 신세대 일본 작가들과 달리 일본 현대사회의 변화상이 개인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을 치밀하게 형상화한다는 엇갈린 평을 받고 있는데….

“내가 느끼는 것에 충실한다는 것이 내 작업의 모토다. 작품을 쓰면서 무엇에 의존하거나 의도적으로 집착하지는 않는다. 물론 결과로서 일정한 느낌이 생긴다면 그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소설 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주가 없다. 이제까지처럼 계속 써나갈 뿐이다. 내 작품이 사랑을 받고 있다니 한국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