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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2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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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 항의한 사람들은 이런 국제기구에 초국가적인 차원의 힘의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 저널’지에서 한 경제학자는 “WTO는 세계정부가 아니다”고 주장했고 여러 학자들이 이에 동의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사설도 “WTO는 전지구적 정부가 아니라 단지 국가들간에 합의를 이끌어 내고 논란이 있을 경우 중재에 따르도록 하는 곳”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구성원을 권위에 복종하도록 하고 규정을 어겼을 경우 벌을 받도록 하는 종류의 전통적인 국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의 많은 권력이 WTO와 같은 국제기구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삼십년 사이에 하나의 중앙집권적인 세계정부가 등장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WTO가 국가주권을 침범한다고 비판한다. 이번 시애틀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개발도상국 국민 뿐 아니라 선진국 국민도 무역장벽의 완화로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한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전지구적 차원의 환경법과 노동법에 반대한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세계정부의 한 모델을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은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국가간의 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단일화폐가 필요해진다. 식품분류법이나 노동법 등도 일정한 규약을 필요로 한다. 가난한 나라의 최저임금은 향상되고 어린이에 대한 노동착위도 금하게 된다. 국가간 경제적 의존이 심화돼 전쟁의 위험도 줄어든다. 경제적 통합은 결국 자연스럽게 정치적 통합으로 이어지게 된다. 환경문제나 기후변화, 테러리즘 등 초국가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들의 증가도 정치적 통합을 부추킬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는 경제나 과학기술면에서 비슷한 수준의 나라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나라간의 격차가 심한 경우는 세계정부의 형성에 장애가 많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국가간 경제적 격차는 줄어들 것이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들은 이미 서로의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