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마당]소보원도 손 못대는 보험사 "법대로"횡포

  • 입력 1999년 11월 30일 19시 09분


경북 문경시에 사는 박성진씨(34·자영업)는 요즘 보험회사가 제시한 ‘합의금’을 받아들일지 고민에 빠졌다. 보험회사로부터 상해보험금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개월, 혹은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소송을 걸 형편도 안된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했으나 보험회사측에서 되레 소송을 제기, 소보원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보험회사가 법원에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음을 확인해 달라고 제기하는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이 ‘악용’되고 있다.

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소보원이 피해구제 처리중 한쪽에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피해구제처리 중지를 요청할 경우 보호원은 더이상 ‘소비자 보호’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때문에 소비자는 보험회사측과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보험금 자체를 포기하거나 보험회사측이 제시한 합의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박씨의 경우도 그렇다. 96년10월 A보험회사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박씨는 어머니 은모씨(63)가 98년 3월 미끄러져 대퇴골 골절 진단을 받자 보험금을 신청했다. 보험회사측은 은씨가 20년전 뇌졸중을 앓은 적이 있어 이같은 사고가 났는데 보험계약을 할 때 이를 알리지 않아(고지의무위반) 보험금청구권이 없다고 지난 5월 통보했다.

박씨는 보험회사측이 뇌졸중과 상해사고와의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보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소보원도 박씨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보험회사측이 최근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내는 바람에 소보원측에서는 이 사건에서 손을 뗄 수 밖에 없었다.

소보원 분쟁조정국 법무보험팀 장수태팀장은 “먼저 소보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을 받은 뒤 이에 불복할 경우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법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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