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전위서예가 유이치, 내달5일 예술의전당서 개인전

  • 입력 1999년 5월 23일 19시 58분


1945년 3월11일 새벽. 도쿄 요코가와 초등학교 운동장 시체더미 속에서 한 청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의식을 되찾았다. 전날 미국 공군 B29폭격기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이노우에 유이치(1916∼1985). 일본 현대미술사에 큰 파장을 몰고온 전위 서예가가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선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대가로 가까스로 자유를 얻었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통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이전부터 공부하던 글과 그림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예를 시도했다.

이같이 현대 서예의 새로운 측면을 탐구한 이노우에의 서예작품들이 한국에 왔다. 6월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열리는 ‘이노우에 유이치 서울전.’ 예술의 전당과 동아일보 공동주최. 1백30여점이 전시된다.

그는 재료와 기법면에서 모두 서예의 전통과 단절했다. 붓대신 들에서 베어온 풀과 싸리나무 등을 묶어 사용했다. 먹물대신 먹물에 본드를 섞어 사용했다. 순간적인 붓놀림의 흔적이 종이위에 생생히 남게기 위한 것이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일자서(一字書)’. 여러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대형 글자 하나만을 써서 전시하는 것이다. 가난한 고물상집 아들로 어렵게 자란 그는 평생 ‘가난할 빈(貧)’ 자를 주로 써왔다. 그는 57년 일본이 아닌 브라질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서예작가로서는 처음 출품했다. 이후 뉴욕 독일 등에서 잇단 전시회를 하며 주목받았다. 일본 평론가 우나가미는 “절규의 느낌을 서예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예술의 전당측은 “한일 문화교류의 한 측면으로 일본 현대서예의 단면을 보여주기위해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02―580―1132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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