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서양미술의 …」/聖속에 숨은 性들

  • 입력 1999년 5월 7일 19시 40분


★「서양미술의 섹슈얼리티」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지음 이하림 옮김 시공사 12,000원★

“무아경에 빠진 성녀는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인과 마찬가지의 표정이다. 천사가 그녀를 찌르려고 쥔 화살은 신성한 사랑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성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무아경’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건가. 저자는 성(聖) 속에서 성(性)을 보았다.

유럽의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그리스 로마신화나 성서를 주제로 그려졌다. 가장 성(聖)스러운 주제의 그림인데도 구석구석 성적(性的)매력이 생생하게 숨쉬고 있다. 고대 폼페이의 벽화에서 현대의 팝아트까지 서구 미술에 나타나는 섹슈얼리티와 성적 상징의 역할은 무얼까. 이를 탐구한 미술 비평서가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서양미술의 섹슈얼리티를 밝히기 위해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감정전이(感情轉移)’. 미술작품은 성행위를 묘사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 상징으로 에로틱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 앞의 ‘성녀 테레사의 무아경’이 대표적인 예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의 그림에서 남성의 ‘거세’에 대한 공포를 읽어내고, 단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루크레티아’를 그린 루카스의 작품에 마조히즘(자학)적 쾌락이 담겨 있음을 밝힌다.

중세 서구 미술의 누드 작품에는 여성의 나체와 관찰자가 함께 묘사된 경우가 대부분. 저자는 이를 ‘관음(觀淫)’의 욕구로 파악한다. “작품 속의 감상자는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관음자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관음의 대상은 19세기가 되면서 당당해지기 시작한다. 마네의 작품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 ‘풀밭위의…’에서 두 남자는 옷을 입고 여자는 누드였다. 그러나 여인은 누드인데도 어떤 열등감도 느끼지 않고 남성들과 동등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저는 영국의 템스앤드 허드슨사의 ‘월드 오브 아트’시리즈. 미술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개설서지만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경에 대한 기초 지식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동양이나 아프리카 미술의 성애 장면은 재미있고 매력이 넘치며 힘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에 비해 기독교적 성관념에 억압된 서양미술에 나타난 성은 죄의식과 무기력감, 고통과 짝지워지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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