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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월 20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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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제 꼴이 흉해서 차라리 잘됐지만. 꽃은 시들어 말라도 바랜 채로 아름다운데 포유류인 사람의 몸은 어째서 이렇게 무참하게 허무러져 가는 걸까요.
1996년 2월 윤희.
오늘 의사가 와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통고를 했어요. 나는 정희의 북받친 울음에서 모든 걸 다 읽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든가 뭐 그랬겠지요. 정오 무렵에 엄마가 목사님과 신도 두어 분과 함께 다녀 가셨어요. 당신 아직도 유물론자인가요? 빈정거리는 말이 아니랍니다. 저는 저들의 믿음이 사랑스럽기까지 해요. 어둠 뒤편에 뭐가 있든 없든 알게 뭐람. 그렇지만…하지만, 이런 날들이라도 연장 되기만 한다면 당신을 한번 만나보구 싶어요.
병원 마당을 가득 채웠던 옛날 식 아카시아 꽃두 다 날려가 버리고 썽썽한 녹음이 온 세상을 덮었네요.
그곳을 떠난 뒤에 당신의 젊은 얼굴을 그린적이 있어요. 나중에 그림의 빈 여백에는 이만큼 늙어버린 나를 그려 넣었지요. 그랬더니 당신은 내 아들 같아 보였어요. 깔깔.
유행가 하나 적어 놓을게요. ‘사랑은 어째서 언제나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지, 사랑은 어째서 죽음과 꼭 같은 닮은꼴인지’
오래 전에 불경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정이 맺혔던 부분들이 제일 먼저 썩어 없어진대요.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1996년 여름, 당신의 윤희.
*추신:언니는 사흘 뒤인 7월 21일 저녁에 운명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언니의 유언대로 화장 해드렸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말했어요. 나는 갈뫼로 간다, 나중에 오 선생님 만나면 거기 꼭 오시라고 전해라. 그리고 언니는 저에게 약속한다고 말하라고 해서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오 선생님께 이 소식이 언제 전해질지 모르지만 꼭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동생 한정희.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슬픔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자다가 깨어난 이처럼 무의식의 수렁에서 천천히 감각이 되살아 오듯이 현실로 돌아왔다.
독방에서 오래 버티다 보면 자잘한 감정들은 대개 두터운 무감각 속으로 깊이 숨는다. 겉으로 드러내 보아야 생명 활동에 전혀 이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말을 잊어먹기 시작한다. 빤한 단어인데도 막상 입에 올리려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기억에서 사라진 단어들은 차츰 많아지고 주위 사람들의 이름까지 잊어 버린다. 그런 단계를 지나면 눈 앞에 보이는 생활 도구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다. 가만있자, 저 물건의 이름이 뭐더라.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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