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학년도 대입논술/중앙대(자연계)]

입력 1999-01-12 16:41수정 2009-09-2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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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아래 글의 논지와 그 근거를 밝히고, 그 주장의 타당성 여부에 대하여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술하시오.

자연과학은 물질세계에 대한 보다 선명하고 넓은 영상(映像)을 형성해 나갔다.

물리학에서 이러한 영상은 오늘날 우리가 고전물리학 개념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의하여 기술될 수 있는 것이었다.

우주는 시간.공간 내의 사물로 구성되어 있고, 사물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은 힘을 낼 수 있고, 힘에 의하여 작용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물질과 힘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사건들은 발생하며, 모든 사건은 다른 사건의 결과와 원인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정관적(靜觀的)인 것으로부터 실용적인 것으로 변하였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으로 무엇을 할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리하여 자연과학은 기술과학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모든 지식의 발달은 그것으로부터 어떤 실용적인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연결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물리학에서 뿐만이 아니라 화학과 생물학에서도 근본적으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의학이나 농학에서의 새로운 방법의 성공은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전파시키는 데에 근본적으로 기여하였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19세기는 자연과학에 있어서 지극히 경직된 체계를 조성하여, 과학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일반적인 사고방식마저 영향을 주게되었다.

이러한 체계는 시간, 공간, 물질 그리고 인과관계(因果關係)와 같은 고전물리학의 기본 개념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실재(實在)의 개념은 우리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거나, 기술과학이 제공한 정밀 기구로 관찰될 수 있는 사물이나 사건에적용되었다.

물질은 기본적 실재였다.

과학의 발달은 곧 물질세계를 정복해 가는 십자군으로 그려질 수 있었다.

유용성이 그 시대의 모토가 되었다. <중략> 한편 이러한 체계는 너무 범위가 좁고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라든가 인간의 영혼, 혹은 생명과 같은 항상 본질적인 것에 속해 왔던 언어의 많은 개념들이그 체계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졌다.

정신은 물질 세계를 비쳐주는 일종의 반사경으로만 그려질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심리과학에서 이러한 반사경의 성질을 연구할 때 과학자들은 항상 그것의 광학적 성질보다는 역학적 성질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것에까지도 사람들은 고전물리학의 개념, 즉 근본적으로 인과관계의개념을 적용시키려 하였다.

같은 방식으로 생명도 자연법칙을 따르는 일종의 물리적또는 화학적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인과관계에 의하여 완전히 결정될 수 있는것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의 개념은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 광범위한 증거를 제시해주었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는 특히 전통적인 종교의 대상이며 오늘날 다소 상상에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사실들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념을 극단적 결론에까지 추종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 공개적적의(敵意)가 형성되었으며, 다른 나라에 있어서조차도 종교에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점차 무관심해져 가는 경향이 일어났다.

기독교의 윤리적 가치만은 적어도 당분간 이러한 추세에서 제외되었다.

과학적 방법과 합리적 사고에 대한 확신이 인간 정신이라는 성역(聖域)을 지키고 있던 모든 다른 관념들을 대치하였다.

현대물리학의 공헌을 이제 되새겨 볼 때 그 결과가 가져다준 가장 중요한 변화는 19세기의 이러한 경직된 개념 체계를 용해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이전에도 실재의 본질적인 면을 이해하는 데 너무 제한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견고한 체계로부터 벗어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상 그처럼 성공적이었던 물질, 시간, 공간, 그리고 인과관계의 기본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발견할 수 없었다.

오직 기술과학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정밀한 기구에 의한 실험과 그에 대한 수학적 해석만이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근거를 제공하였고 혹은 비판적 분석을 강화하였고, 결국은 그러한 경직된 체계를 풀어놓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러한 용해 과정은 두 가지의 뚜렷한 단계로 일어났다.

그 첫째는 상대성 이론을 통하여 공간, 시간과 같은 기본 개념조차도 변할 수 있으며, 사실상 새로운 경험때문에 변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언어로서의 공간과시간의 모호한 개념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뉴튼 역학-종국에 가서는 잘못 받아들여졌던-의 과학적 언어로 정확히 공식화 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원자 구조와 관련된실험 결과에 의하여 강화된 물질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었다.

물질의 실재에 대한 생각은 19세기의 그 견고한 개념 체계에서 무엇보다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에틀림없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적어도 새로운 경험과 관련하여 수정되지 않으면안 되었다.

그 반면에 그 때까지 자연언어에 속해 있던 개념들은 그대로 남겨지게되었다.

사람들이 원자에 관한 실험이나 그 결과를 기술해야 할 때 물질이라든가 사실, 혹은 실재에 대하여 이야기함에 있어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을 물질의 극소 부분에까지 연장시킨다는 것은 고전물리학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사실상 물질에 대한 일반적 관점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결과등은 무엇보다 과학적 개념을 그것이 소속되지 않은 영역에다소 강제로 적용시키는 것에 대한 심각한 경고로 생각되었다.

예를 들어 고전물리학의 개념을 화학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오늘날 물리학의 개념, 더욱이 양자론의 개념조차도 생물학이나 다른 과학분야에 널리 적용될수 있다는 가정을 다소 적게 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우리는 현상을 이해하는데있어서 과거의 개념들이 매우 유용했던 과학의 부분에까지도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문호를 개방하려고 한다.

특히 과거의 개념이 무리하게 적용된 것처럼보이거나 주어진 문제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그러한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조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현대물리학의 발전과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지식이 팽창함에 따라 있는 그대로 애매하게 정의되었던 자연언어의 개념들이, 어느 한정된 영역의 현상에만 작용되어 유도된 과학적 언어의 정확한 개념보다 더 안정된 것으로보이는 경험이다.

이것은 사실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언어의 개념들은 사실과의 즉각적인 관계로부터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사실을 나타내준다.

자연언어의 개념들은 매우 뚜렷하게 정의되기 어렵고 사실 자체가 그렇듯이 세월이거듭됨에 따라 또한 변화를 겪게 되지만 결코 사실과의 즉각적 관계를 상실하지는 않는다.

이에 반하여 과학적 개념들은 이상화된 개념들이다.

그들은 정련(精鍊)된실험 기구에 의하여 얻어진 경험으로부터 유도되고 공리와 정의에 의하여 정확하게결정된다.

이러한 정확한 정의를 통해서만이 그 개념들은 수학적으로 유도해낼 수있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화된 과정과 정확한 정의를 거치는 동안, 사실과의 직접적인 관계는 상실된다.

연구의 대상이 되어온 자연 현상에 있어서 이러한 개념들은 아직도 사실과 매우 가깝게 부합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합은 다른 현상들을 내포하는영역에서는 상실될는지 모른다. <중략> 19세기의 인간사고의 일반적 경향은 과학적 방법과 정확한 합리성에 대한 확신이 점차 증가하는 것이었고 과학적 사고의 폐쇄된 체계에 들어맞지 않는 자연언어의 개념들- 예를 들면 종교적인 것- 에 대하여 일반적인 회의(懷疑)를 갖게 된 것이었다.

현대물리학은 여러가지의 형태로 이러한 회의를 증가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과학적 개념의 정확성에 대한 과대 평가, 일반적인 발전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그리고 마침내는 회의자체에 대하여 반발을 일으키게 하였다.

과학적 개념의 정확성에 대한 회의주의는 합리적 사고의 적용에 있어서 어떤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사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과학적 개념은 항상 사실의어느 한정된 부분에만 적용되며 아직 이해되지 못한 부분은 무한한다.

알려진 사실에서부터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 발전할때마다 우리는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이해'라는 말의 새로운 의미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어느형태의 이해라도 결국 자연언어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실에 접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자연언어와 그 본질적 개념을 의심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를 갖지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을 항상 그들이 사용되어 왔던 대로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현대물리학은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정신과 사실과의 관계에있어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갖도록 문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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