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분쟁 급증…『대출때 이름 빌려주지 마세요』

  • 입력 1998년 9월 23일 19시 14분


회사원 김모씨는 94년 3월 동료 이모씨로부터 “내 부동산을 담보로 A은행에서 8천만원을 빌릴테니 명의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김씨는 ‘이씨 부동산이 담보로 잡혀 있으니 괜찮겠지’하는 생각에 계약서에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었다. 김씨는 그 후 2차례에 걸쳐 상환기일을 연장하는데도 직접 서명했다.

그러나 A은행은 97년 초부터 이씨가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자 김씨를 신용불량거래자로 분류하고 이자를 청구했다. 올 3월에는 담보부동산을 경매처분하고 남은 빚 6백만원을 갚으라고 김씨에게 요구했다.

김씨는 “내가 빌린 돈이 아니다”고 은행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으나 “이름만 빌려주고 대출금을 받지는 않았지만 계약서에 서명 날인한 사람에게 상환책임이 있다”는 회신을 받았을 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기업 부도 급증과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금융기관 대출금 연체와 부실 여신에 따른 분쟁이 크게 늘어났다.

23일 은행감독원은 올 8월까지 처리한 분쟁건수는 모두 2천6백9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9백6건(50.6%)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여신 관련 분쟁은 8백5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4.4% 늘어났다. 담보나 보증 관련 건수는 9백15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69.8% 증가했다.

은감원은 다른 사람이 돈을 대출받는 경우 이름을 빌려주지 말도록 당부했다. 금융기관 직원이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상환책임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구두약속은 증거가 되기 어렵다는 것.

친인척이나 직장동료에게 불가피하게 명의를 빌려줄 경우라면 명의대여자에게 변제책임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문건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두라는 것.

은감원은 또 금융기관에 담보로 잡힌 주택이나 토지를 살 경우에는 저당권 범위가 설정 당시 대출금뿐만 아니라 다른 대출금과 연대보증채무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 매수자는 매도인과 함께 해당 금융기관을 찾아가 채무범위를 서면으로 확인하고 추가 대출금지를 서면으로 요청해야 한다.

또 담보 부동산을 매입해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는 즉시 해당 금융기관이 매도인에게 추가대출을 하지 말라는 서면 요청을 해야 한다. 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 매도자는 매수자와 함께 해당 금융기관에 가서 채무자 명의변경을 해야 한다.

〈이 진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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