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30代 문화]옛노래 찾는 아저씨 부쩍늘어

  • 입력 1998년 3월 22일 21시 42분


지난 토요일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록카페. “웰컴 투 더 호텔 캘리포니아(Welcome To The Hotel California)”를 합창하던 1백여명의 관객들은 기타리스트가 딥 퍼플의 ‘하이웨이스타(Highway Star)’ 속주부분을 연주하자 숫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래고래 목청을 높이는 관객 대부분은 ‘마음은 소년, 몸은 아저씨’인 넥타이부대와 비슷한 또래의 직장여성들. 공연제목도 ‘30대를 위한 올드 록 콘서트’.

“라디오에서도 듣기 어려운 중고교 시절 추억이 묻은 록들을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다기에 귀가 번쩍 했어요. 구제금융시대에 살기도 어려운데 옛날 생각이나 하자며 직장동료들과 떼지어 왔지요” 객석에서 어깨춤을 추던 천호선씨(36·H광고사영업책임자)의 얘기다.

이튿날인 일요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는 초로의 가수 조동진의 노래 ‘제비꽃’이 울려퍼졌다. “내가 처음 너를 보았을 때…”라는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 눈주위를 훔치는 관객은 겨우 새댁티를 벗은 듯한 여성들.

30대의 ‘문화반란’이 시작되는 것인가. 먹고살기 바빠 공연계에 찬바람이 부는 요즘, 유독 30대를 겨냥한 문화이벤트만은 그럭저럭 수지를 맞춘다.

10대들이 TV를 통해 ‘서태지와 아이들’을 문화대통령으로 옹립하고 속사포같은 스피드로 랩을 불러대던 90년대. 30대는 ‘쉰세대’로 낙오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힙합댄스를 흉내내거나 숨을 헉헉거리며 댄스곡을 따라 불러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반전’이 시작됐다. 음반매출의 풍향계라는 리어카행상들이 조관우의 리바이벌곡 ‘님은 먼곳에’와 ‘꽃밭에서’를 틀고 또 틀더니 하반기 출시된 김종환의 복고풍 발라드 ‘사랑을 위하여’는 1백만장 가까이 팔리는 성공을 거뒀다.

대머리아저씨가 된 왕년의 록그룹 ‘산울림’의 화려한 컴백공연, 70년대 록의 대부 신중현과 요절한 80년대 발라드의 천재 유재하를 기념한 헌정음반도 97년에 발매됐다. 이 움직임의 ‘배후세력’은 청소년기 때 이 가수들을 우상으로 섬겼던 30대초중반의 넥타이부대와 미시들.

“얼마전 유재하 음반을 사서 들으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든지요. 마음만은 언제나 그 노래를 부르던 시절과 다름없구나 확인되는 것 같았어요.”

미시주부 안연신씨(32·교사·경기 안양시)의 고백.

30대의 ‘내문화주장’이 확연해지자 재빠르게 움직인 것은 음반사.

80년대 디스코테크 명곡이었던 ‘YMCA’ 등 왕년의 댄스곡들을 모은 편집음반 ‘시월유신’이 등장하는가 하면 한동안 음반매장에서 찾기 어려웠던 ‘신중현과 엽전들’ ‘어니언스’ ‘산울림’의 데뷔앨범 등이 CD로 다시 선보였다.

30대의 ‘내문화주장’은 왜 최근들어 두드러진 것일까.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90년대를 지배했던 10대문화가 최근 중학생 나이의 가수가 등장하는로틴(Low Teen)까지 내려가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을 다 했다”면서 “세대분화의 진화과정은 끝났기 때문에 이제 각 세대의 문화가 공존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10대 문화의 자장이 사라지는 자리에 유독 30대 문화가 두드러지는 것에 대해 문화평론가 이성욱씨는 “지금의 30대가 대중매체의 세례를 받은 첫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흑백 TV로 ‘쇼쇼쇼’를 보면서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를 따라부르고 라디오심야방송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으며 영어를 익혔던 경험의 공유가 이 세대를 강하게 결속시킨다”는 것이다.

30대의 문화취향은 새로운 문화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해 대학로에 ‘동숭동에서’ 등 통기타음악이 흐르는 라이브카페 서너곳이 생겼다. 신촌에는 70년대 음악만 틀어주는 어두침침한 카페들이 하나둘 틀을 잡았다. 허리든 몸이든 ‘중간’이 건실해야 한다고 했던가.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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