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씨 소설 「이민」]『신대륙 약속된 땅 아니다』

입력 1998-03-09 07:38수정 2009-09-2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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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안내창구를 서성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이후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된 30대 샐러리맨들, 하루아침에 중견사원에서 실업자가 된 중년들…. 조국에서 찾을 수 없게 된 ‘안정된 미래’ ‘재도약’의 마지막 가능성을 거머쥐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신천지입국을 타진해보는 것이다.

오래전에도 그랬다. 5·16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농장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남미농업이민을 장려했을 때 그 먼길을 나선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분홍빛 꿈’이 있었다.

그들은 꿈을 이루었을까. 중견작가 김용성(58·인하대 국문과교수)이 그 여로를 좇았다. 3권짜리 장편소설 ‘이민’(밀알).

92년 겨울의 취재여행으로부터 출간까지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중소국교 수립이후 백두산으로, 시베리아로 작가들이 줄이어 취재여행을 떠날 때 왜 저자는 홀로 남미행을 택했을까.

“구소련이나 만주지역 이민의 삶은 일제식민통치와 맞물려 그 고난상이 자연스럽게 문학적 소재로 다뤄져 왔지만 남미이민의 경우는 그저 개인적인 선택으로 간주돼 관심밖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미이민에도 분명히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계기들이 내포돼 있어요. 좌익활동 전력으로 낙인찍힌 사람, 박정권의 사채동결조치로 부도를 맞아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 빈농 신세를 면해 보겠다고 떠난 사람 등이 다 불안정했던 당시 삶을 반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60년대, 비행기도 아니고 두달이 걸리는 배편으로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땅에 내린 박승구일가와 이경애일가. 자동차부속상을 하다 망한 집안의 아들인 승구와 정치인을 꿈꾸다 군사정부에 환멸을 느껴 이민을 결정한 아버지를 따라 먼 길을 온 경애는 연인사이.

그러나 돈벌이를 위해 브라질로 떠난 승구를 찾아가던 경애는 한국인 밀입국 브로커에게 성폭행을 당한뒤 잠적하고 승구는 ‘불법체류자’라는 불안한 신분에 쫓기며 농장노동자 보따리장사를 전전하며 돈을 모으는데….

‘약속된 땅’이 한국인 체질로는 정착하기 어려운 밀림지대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이민자들의 꿈은 배반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고난의 이유를 ‘밖’에서만 찾지 않는다. 토착민들로부터 “돈이면 무엇이든지 하는 한국인”이라는 적의를 불러일으킬만큼 배타적인 이민자들의 생활자세, 동포들을 상대로 사기 강도 살인을 일삼는 비열함, 상류사회로 진입하겠다는 허영심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경박한 인간성 등을 그는 굴절의 원인으로 빠뜨리지 않는다.

“민족주의나 동포애를 강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환멸과 불만으로 삶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이민을 가도 단지 장소만 달라질 뿐 헤매임은 여전하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한국전에 참전한 유학생의 고뇌를 그린 데뷔작 ‘잃은 자와 찾은 자’이래 김용성은 극적 상황에 놓인 인간들 속에서 휴머니티찾기를 그치지 않았다. 척박한 이민생활에서 그가 찾은 대안도 ‘보란듯이 떵떵거리고 사는 한국인’이 아니라 토착민들을 위해 땀흘려 번돈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마지막장에서 독자들은 알게 된다. 서울부터 지구반대편의 남미까지, 고난에 찬 그 긴 행로가 바로 ‘사람됨’으로 향하는 것이었음을….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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