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토론실,「경로우대석」 비난 빗발

  • 입력 1997년 11월 10일 20시 02분


『누구는 서서 가고 누구는 조금 더 살았다고 앉아서 가는 세태는 고쳐져야 마땅하다. 왜 우리가 노인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가』 지하에 계신 조상님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지만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의 젊은 후손들은 PC통신이라는 「낯선 매체」를 통해 노인공경(老人恭敬)사상을 정면으로 공격한다. 「전철 경로석에 앉는 젊은이들에게 망신을 주겠다」는 철도청의 방침이 보도(본보 10월29일자 37면)된 뒤 PC통신에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가」라는 토론실이 개설되고 순식간에 수만건의 의견이 접수되는 등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 통신인은 『연장자 우선 원칙은 한국인의 병폐적 고정관념』이라고 단정하고 『선입견과 금기를 과감히 타파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통신인은 『제대로 된 사회라면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노인보다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를 우대해야 한다』면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므로 제삼자가 비난하거나 칭찬할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지금 우리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도 다 허리굽은 노인 덕분이다』며 이들을 꾸짖었으나 양보불가론의 대세속에 묻혀버렸다. 한 토론자가 『너희는 부모도 없느냐. 패륜적인 논쟁을 당장 집어치워라』고 호통을 쳤으나 『섣부른 감정으로 이성적인 토론장을 망치지 말라』는 반박만 쏟아졌다. 자리 양보론자는 주로 한탄조의 글을 올렸다. 『노인을 앞에 세워놓고 억지로 잠을 청하는 젊은이를 보면 차라리 인생이 서글퍼진다』 『동방예의지국이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 등등. 서울대 사회교육과 조영달(曺永達)교수는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정신과 물질의 불균형 발달로 인해 사회의 본원적 가치마저 무너지고 있다』면서도 『청소년에게 모범을 못보인 기성세대의 인과응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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