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자 교수의 독무 「숨」을 보면서 심장이 멎어버릴 듯한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산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는데 그 척박한 대지 위로 강물은 과연 흘러갈 수 있을 것인지…』
호주의 저명한 시인 겸 무용평론가인 스티븐 클락이 「창무단」의 공연 제1부를 보고 난 다음 휴식시간에 표현한 관람소감이다.
지난달 30일 호주 시드니대 캠퍼스 내에 위치한 유서깊은 무대 시모어 센터에서 열린 창무단의 공연은 끊어질듯 이어지는 그로테스크한 김영동의 선율, 멈추어 설 듯 발길을 내딛는 한국여인들의 몸짓으로 객석의 탄식을 자아냈다.
창무단 시드니 초청공연 1부는 춤의 본질을 아우르는 창무단 대표작중의 하나인 「춤본1」, 산조의 원류인 진도 굿음악 시나위와 인간의 몸이 맞닿아서 우러나온 내면세계를 그린 김매자 교수의 독무 「숨」, 오랜 세월 동안 굴종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한국여인들이 순명(順命)하는 자세로 하늘에 이르려 하는 염원을 현대적 감각으로 구성한 「활」 등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1부 공연 작품들이 「맺음」의 형식미로 관객들의 긴장감을 자아내게 만든 반면 2부공연에서는 사물놀이 팀이 등장하여 그 「맺음」을 한바탕 신명으로 풀어버리는 「풀어냄」의 시간이었다. 특히 「춤, 그것은 신명」이라는 타이틀로 공연된 2부공연작품은 변화무쌍한 타악과 어우러져 억눌린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역동적인 몸짓으로 승화시킨 군무였다.
「신명」은 금방이라도 무대를 터뜨려버릴 듯한 한국인의 밑도 끝도 없는 에너지로 객석을 술렁이게 만들었고 끝내는 관객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무용단과 관객이 한바탕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뒤풀이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약 90분 동안 한국인의 춤사위를 눈여겨 본 호주인들은 너나할것없이 무대 위와 객석에서 엇박자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고 두 팔을 들어올려 한국선율이 이끄는 대로 휘저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당신들이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다 신천지를 만들어 내고 머나먼 시드니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힘은 바로 이 신명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용단이 리드하는 대로 「강강술래」를 따라서 춘 무용평론가 스티븐 클락이 연신 땀을 닦아내면서 들려준 제2부 관람소감이다.
창무단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조직위원회가 「문화올림픽계획」의 일환으로 올림픽예술제를 개최하면서 외국 팀으로는 유일하게 초청한 무용단이다.
이번 창무단의 초청은 김매자 교수가 서울올림픽 폐막식을 위해서 안무한 「떠나가는 배」를 심도 있게 검토한 조직위 예술팀이 시드니올림픽 개 폐막식 예술행사를 구상하기 위해 창무단으로부터 한 수 배우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한편 10월 2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창무단의 공연소식을 사진과 함께 크게 게재하며 『아주 느리고 섬세하면서도 인간 내면의 강한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 감동적인 작품이었다』고 평했다.
호주의 유명한 현대무용가이면서 독설가로 악명이 높은 리처드 앨런도 『그동안 한국무용은 부채춤 등 정형화된 것들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불교적 색채가 강한 한국의 전통무용에다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해서 독창적인 작품을 안무했다』고 말했다.
윤필립(시인·호주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