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책광고 잘 내주는 곳으로』…출판사 「이적」활발

  • 입력 1997년 9월 11일 07시 52분


스카우트경쟁으로 선수들간의 이적(移籍)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프로스포츠업계. 최근 문학출판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오랜 세월 한 출판사의 간판노릇을 하던 책들이 새로운 계약조건에 따라 출판사를 옮겨가는 것이다. 최근의 두드러진 사례는 80년대의 간판시집 「노동의 새벽」의 이적. 저자 박노해씨의 가족이 최근 출판사를 풀빛에서 해냄으로 옮겼다. 소설가 고원정씨도 80년대작인 대하소설 「빙벽」을 현암사에서 해냄으로 옮겨 출간한다. 해냄의 박광성주간은 『「노동의 새벽」의 경우 풀빛판에 실린 고 채광석씨의 평론을 그대로 싣고 90년대 문학평론가의 평을 추가해 연말에 「해냄판」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빙벽」은 작가가 3권 분량의 원고를 추가해 내년에 4부작으로 증보발간할 예정이다. 문단은 특히 「노동의 새벽」의 「해냄」행을 두고 『90년대적 변화양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의 새벽」의 첫 출판사인 풀빛은 80년대 대표적인 사회과학전문출판사로 이른바 「운동권서적」을 만들어온 곳. 반면 해냄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등 「좌부터 우, 보수부터 진보까지」를 아우르는 백화점식 경영으로 90년대에 급성장한 출판사다. 84년부터 13년간 「노동의 새벽」을 출간한 풀빛 나병식사장은 『저자 가족이 바라는 만큼 책광고를 자주 내기가 어려워 출판사를 옮기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문학출판 관계자들은 『과거에는 저자의 지적 성향에 따라 출판사를 선택했지만 요즘은 자기 책을 얼마나 자주 광고해 줄 수 있는지가 선택 기준』이라며 『출판사도 자기지향과는 관계없이 「팔리는 작가」만 좇고 있어 이래저래 개성이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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