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령, 그 설원(雪原)의 정상에서 무너지는 가슴을 눈물로 일으켜 세웠던 인고의 세월. 그 희망의 집 스키장을 통째로 빼앗기고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만 했던 참담함. 14년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서 그곳을 바라보노라니 어느새 격함보다는 용서와 사랑이 밀물처럼 몰려와 있고….
진부령의 시린 은빛 속에서 고통과 시련, 사랑과 용서를 배운 「내 사랑 알프스」의 화가 이정순씨(52). 3년전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를 펴내 독자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그가 이번엔 그 이후의 이야기 「아픈만큼 그대 가까이」(동아일보사 발행)를 독자곁으로 띄워보낸다.
『그냥 찾아오는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유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그래서 고난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거죠. 시련으로 얻어낸 행복만이 값진 것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이번 책에는 기꺼이 고난을 감내하는, 관조적이고도 긍정적인 삶의 여유가 결 고운 무늬로 수놓아져 있다. 그 힘겨웠던 지난 세월은 바로 사랑의 결실을 예비했던 것일까. 고통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 사랑이 있었고 사랑이야말로 용서를 통해 온다는 것까지.
첫번째 책 「강한 여자는…」 출판 이후 그는 더욱 바빠졌다. 계속해오던 미술사강의와 본업인 그림그리기를 게을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최근엔 강연 초청이 끊이지 않는데다 자신을 찾는 독자들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눠야한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빠질 리 없다. 특히 탤런트 황신혜씨의 동생 황정언씨와의 인연은 각별하고도 뭉클하다.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돼 입밖에 움직일 수 없는 황씨와의 만남. 황씨의 부탁을 받고 그는 함께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가르쳤다. 절망의 유혹은 도처에 잠복해있었고. 그러나 그들은 해냈다. 그것도 불과 2년만에. 그리곤 지난해말 정성스레 전시회를 마련할 때의 감격이란….『황씨를 보면서 나의 시련은 별 것 아니구나 하고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고통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단아한 모습을 지닌 이씨. 그에게는 수채화같은 투명함과 설원의 순결함이 배어난다. 바로 이것이 그가 시종 강조한 「용서」의 모습이 아닐까.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