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겪었던 「예방주사 공포증」이 이제는 사라질 것 같다. 영양제를 먹듯 캡슐을 삼키면 면역력이 생기는 경구용 백신 개발이 눈앞에 다가왔다.
최근 미국에선 항원을 바나나에 유전공학적으로 이식해 이를 먹으면 체내에 항체가 생기도록 하는 기술이 나오는 등 경구용 백신 개발연구가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유도탄 방식」을 이용해 먹는 예방약 개발이 완료단계에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경구용 백신은 콜레라균이 십이지장 부근 점막을 잘 통과한다는 점을 역이용한 것. 콜레라균의 표면 단백질을 일종의 「유도장치」로 사용하고 이 유도장치에 콜레라 항원을 「폭탄」처럼 붙여백신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과학연구센터 정서영 성승용박사와 조남혁씨(박사과정)팀은 이같은 경구용 백신을 개발, 동물실험에서 항체가 형성된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는 지난달말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국제 생체재료 심포지엄」에서 최우수연구상을 수상했다.
십이지장 점막을 백신 투여지점으로 설정한 것은 이 연구성과를 장기적으로 에이즈 백신에 응용하기 위해서다. 에이즈환자는 기도와 폐 위점막의 2차감염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이 곳의 방어력을 높이면 그만큼 생존기간이 연장되기 때문. 소화기관의 점막에 형성된 항체는 호흡기관의 점막으로 확산돼 면역력을 갖추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일단 폐렴백신을 소화효소나 강력한 산에 파괴되지 않도록 「포장」해 십이지장 점막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화기관의 점막을 통과시키기 위해 항원 크기를 10㎛(10만분의 1m)이하로 균일하게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현재는 40마리의 실험용쥐에 먹는 예방약을 투여, 항체를 형성토록 한뒤 폐렴에 견딜 수 있는지를 실험중이다.
먹는 예방약 개발은 절묘한 학제간 연구의 산물이었다. 전공이 서로 다른 정박사(화학) 성박사(의학) 조씨(유전공학)가 머리를 맞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정박사는 『신세대인 조씨가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들렸지만 기초의학을 전공한 성박사가 가능성을 확신해 공동연구를 벌임으로써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최수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