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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7년 6월 9일 0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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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처럼 밀려드는 외제홍수의 외풍을 만난 일부 국내 업계에 협력과 화합의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
「뭉치자」 기운이 두드러지게 무르익는 곳은 화장품 업계다. 외제 공세에 불안을 넘어 위기감까지 느끼고 있는 화장품 업계는 이대로 가다간 올해 외제 점유율이 30%선까지 높아질 것으로 셈하고 있다. 외제가 국내 시장을 반분할 날도 멀지않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사장들이 뭉치기 시작, 유명무실했던 대한화장품공업협회 월례이사회가 공동대응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4월 매출액 상위 20개 회원사를 주축으로 국산화장품 홍보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이 의기투합의 첫 작품이다.
최근에는 업계 공동으로 서울 주요 백화점의 화장품 입점실태를 조사, 69개 화장품 매장중 국산화장품 매장은 7개에 불과하다며 국산품 입점을 대폭 늘려줄 것을 백화점 업계에 요구하고 나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 비슷하겠지만 화장품 업계는 상대방이 매출액을 한자리라도 부풀렸다 싶으면 서로 항의하는 반박자료를 내던 앙숙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작은 일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연대감이다.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밀리고 있는 조선업계도 마찬가지.
지난달 10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조선 수뇌회담에서 일본 조선업계가 『한일 조선소간 간담회는 필요없다』며 협조적 경쟁관계의 청산을 들고 나오자 발끈한 국내업계는 그동안 물고 뜯기에 바빴던 상호관계를 씻고 가격이나 기술 면에서 국내 업체끼리 공조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사업간 제휴로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대우와 기아가 최근 해외사업에서 손을 잡은 게 좋은 예다.
기아는 중공업이 생산한 차량변속기 10만대를 대우 폴란드 현지 상용차업체인 대우 모터폴스카에 공급하고 상용차 변속기 공동개발에도 착수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기아는 대우 체코 현지 상용차업체인 아비아사에도 변속기를 공급키로 했다.
기아가 대우에 자동차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것은 과거 대우 맵시 승용차에 엔진을 공급한 이후 20여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충남 대산 석유화학 단지 안에 이웃해 있으면서 번번이 충돌했던 현대종합화학(대표 鄭夢爀·정몽혁)과 삼성석유화학(대표 兪玄植·유현식)이 최근 50여억원을 들여 제품 수송배관을 서로 연결키로 하고 원료 공동구매와 부족제품을 상호교환하기로 한 것도 불황이라는 외환이 맺어준 악수였다.
광고 부문에서도 자사 제품 홍보 차원을 넘어서서 외제품을 견제하는 광고가 선보이고 있다.
최근 국내 문구 팬시업계의 2위 업체인 바른손은 「디자인 나라를 만듭시다」 「외국 캐릭터는 달러도둑? 좋은 디자인이 나라 경제를 키웁니다」 「21세기 아이들은 디자인을 먹고 삽니다」라는 메시지로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외제문구 팬시제품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이제 적은 국내 경쟁업체가 아니다』는 인식 아래 외제에 맞서 이기려면 국내 업계의 디자인 경쟁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 광고다.
국내 업계는 「치열한 내부 경쟁과 외세에 맞선 내부 협력」이라는 양면의 조화를 탐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허문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