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쥬 뒤비 지음/동문선/8천원)
서기 1000년, 중세인들에게 기아와 궁핍에 대한 두려움은 대단했다. 이 시대에 그려진 그림들은 영양실조로 삐쩍 마른 얼굴에 스치는 굶주림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세의 가난은 「고독」을 동반하지는 않았다. 지하철역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보도 한편에 쭈그린 채 「잊혀진」 부랑인들이 느끼는, 뼛속까지 시린 고독감은 오직 현대의 불행일 뿐. 중세는 비록 헐벗고 비참했지만 공동체 의식이라는 양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빈곤은 그들에게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하는 공동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물질적인 풍요는 오히려 굶주림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 현대인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은, 기실 그 뿌리가 실직에 대한 공포에 뻗어 있다.
죽음을 맞는 중세와 현대인의 자세도 사뭇 다르다.사후세계를 믿었던 중세에 죽음은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모여 축하하는 통과의례였다.
그러나 신심을 잃은 현대인에게 죽음은 암흑과 미지의 세계로의 추락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옮아가는 과정의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시체를 치우는 일에만 급급할 뿐이다. 현대에 이르러 신이 죽은 뒤 마침내 죽음은 「리얼」해진 것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가인 저자는 중세시대의 두려움을 오늘에 비추어 볼 때 풍요의 거품속에 가려진 현대사회의 불안과 공포의 실체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