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고등학교 2학년 6반. 1등을 도맡아 하던 준호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수업종이 울린 것도 모른 채 운동장에 멍하니 서있질 않나, 한밤중에 2학년 교실 팻말을 죄다 떼어버리질 않나.
3일 저녁 방영되는 KBS 2TV 청소년드라마 「스타트」의 내용. 그러나 요즘 중고교생들의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공부스트레스」에 짓눌려 아예 「미쳐버린」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니다.
고등학생 A의 어머니는 어느날 A가 TV를 보면서 신문지를 뜯어먹는 걸 보고 웃었다. 「얘가 TV에 단단히 정신이 팔렸구나」. 그러나 웃을 일이 아니었다. A는 그 뒤로 염소처럼 책꽂이의 책들을 죄다 뜯어 먹기 시작했다.
암만 들여다봐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공부. 영어사전을 뜯어 먹어가며 단어를 외웠다는 누구의 얘기처럼 A는 그렇게 해서라도 책의 내용을 전부 「소화」하고 싶었던 걸까. 애꿎게 아픈 배만 감싸다가 A가 마지막에 찾은 곳은 정신과병원.
고등학생 B는 양쪽 눈이 거의 감긴 채로 부축을 받고 다닌다. 1년전쯤부터 눈이 침침해오다 점점 눈꺼풀이 아래로 처졌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던 B의 어머니는 놀라서 용한 안과를 찾아다녔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
책도 보기 싫고 성적 나쁘다고 꾸중하는 어머니와 선생님도 보기 싫고…. B는 지옥같은 현실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는 것으로 대항했던 것이다.
대학 신입생인 C의 눈 앞에는 가끔 느닷없이 서울대 교문이 나타난다. 신문이 수능시험지로 보일 때도 있고 강의실에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이 들어오는 환상이 보일 때도 있다.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거는 헛것에 시달린 적도 많다. 『훌륭해, 역시 서울대감이야』 『네가 서울대를 가겠다고? 웃기는 소리 말아』 칭찬과 비아냥의 환청이 번갈아 찾아온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서울대 서울대」노래를 들어온 C. 성적이 전교 상위권을 맴돌다 수능시험을 망쳐 서울대를 못 간 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
영어를 끔찍이 싫어하는 중학생 D. 친구들이 D의 영어책 위에 채변봉투를 올려놓는 장난을 친 뒤 강박신경증이란 병을 얻었다. 당장 걸레를 가져와 영어책이 찢어질 정도로 닦아낸 뒤 손을 씻고 또 씻고 책상 위에는 화장지를 깔고….
D는 결국 집에 돌아와 굵은 솔로 머리와 얼굴을 박박 밀다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무의식 속에 있던 영어책에 대한 증오가 병균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 것.
「1등을 놓칠까봐」 「해도 안 되니까」. 1등은 1등대로, 꼴찌는 꼴찌대로 저마다 공부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에 마음이 무겁다. 성적이 중간쯤 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 『너는 잘 할 수 있는데도 만날 놀아서 성적이 그 모양이다』란 말을 듣기 일쑤다.
특별히 고3만 공부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 중에도 공부와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지나쳐 정신과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공부스트레스에 따른 대표적인 증상은 불안 초조해 하고 횡설수설하거나 갑자기 화를 내고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 때로 두통 설사 현기증 허리통증 등 신체장애가 함께 일어나기도 한다.
〈윤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