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세상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알 건 다 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서 뭐, 공부만 하라고?
서울의 연극동네 대학로에 「불온한 기운」이 감돈다. 열세살부터 열여덟살까지, 1318 중고생들이 모기처럼 맹독침을 곤두세웠다. 암호명 「모스키토」. 학전그린소극장(02―763―8233)에서 공연중인 록뮤지컬.
연극은 한 고교에 여당인 통일한국당(통한당) 실세 차대권의원의 딸 민주가 전학오면서 시작된다.
차의원은 여론조사결과 다가올 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자가 30%를 밑돌자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열세살부터 참정권을 주기로 결정한다. 찍을 만한 당이 없어 고민하던 고교생 희망이는 『차라리 너희들이 해보지그러니?』하는아빠의 「순농담」에 힌트를얻어「모스키토당(黨)」을 만들고 민주 등 친구들과 거친 록뮤직을 부른다.
「돈 나눠먹고 시침떼는 어른들/강물엔 폐수, 하늘엔 더러운 공기/이 땅, 이 나라를 맡길 순 없어/우리의 내일도 저당잡힐 순 없어」.
「우린 살고 싶어, 사람답게만/…/굴종의 삶보다는 차라리 반역을/모기떼의 대공습 출동, 모스키토!」이들이내세운 공약은기성세대와 다르다. 양심을 저버리지 않겠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겠다,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 특정세력의 대리인이 되지 않겠다….
드디어 선거날. 뜻밖에도 모스키토당에 몰표가 쏟아진다. 1318은 물론 나이든 시민들도 거짓을 일삼는 지긋지긋한 「정치9단들」에게 신물이 나 있었던 것이다.
지난 5일 개막된 이 「불온한 연극」에 연일 1318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토요일은 현장학습을 하는 전일제 수업 덕분에 단체관람 중고생들로 만원이다. 물론 『물정 모르는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며 단체관람을 막는 학교장들도 있다.
그들은 왜 이 연극에 열렬한 지지를 보이는 걸까.
『속이 다 시원하다』 『바로 우리가 하고 싶었던얘기』『이제야세상이낱낱이 보이더라』는 게공연장에서만난 중고생들의 말이다.
독일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 원작인 이 작품의 번안에서부터 첫공연에 이르기까지 극단 학전의 「의견 창고」 역할을 해온 서울과학고 연극반2학년학생들은이렇게말했다.
『연극보다 현실이 더 심한 것 아닙니까?』(이승호)
『6학년때 문민정부가 들어섰어요. 개혁하면 달라질 줄 알았죠. 그런데 대통령은 실명제(實名制)하는데 아들은 실명제(失名制)를 하데요. 이젠 아무도 안믿어요』(신현영)
만일 자신들이 정치를 한다면 지금처럼 치사하게 해먹지는 않을거라고 입을 모은다. 『알건 다 알지만 우리가 떠든들 세상이 달라질 리 없고, 따라서 괜히 내 기운 빼고 싶지않다』는영악함도지닌것이 그들이다.
『그게 바로 「탈정치적 무관심」이라고 정경시간에 배웠다』고 한 학생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옆의 친구가 그의 등을 후려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라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 봐야지!』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