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섭의 시네월드]「로미오와 줄리엣」

  • 입력 1997년 1월 8일 20시 18분


중세, 이탈리아의 베로나, 적대적인 두 집안, 그리고 비극적 사랑.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 몇개의 컨셉트를 가지고 역사상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사랑의 원형을 만들었다. 이제 이 절절한 증오와 정열의 이야기를 21세기 전자 영상시대와 그 현기증 나는 청춘들에게로 연결시켜 줄 「로미오와 줄리엣」이 등장했다. 그러나 잠깐, 독자여러분이 정형으로서의 미남 미녀 그리고 기승전결의 드라마 구조, 게다가 감미로운 주제가까지 영화적 고전주의로 무장했던 68년작을 아직도 못내 그리워하는 순정파라면 이 신판에 대한 관심을 거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재기 넘치지만 그만큼의 경박감을 감추지 못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열혈감독 바즈 루어만의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유미주의적인 시적 상상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우선 이 영화는 시간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은 중세의 복장을 입고 있지만 현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내란상태에 빠진 도시를 휘젓고 다닌다. 또 공간은 원작과 같이 베로나지만 고적한 중세의 도시가 아니라 몬테규와 캐플릿의 거대 기업가문이 지배하는 라틴풍의 해양도시다. 경악의 극치는 광란의 디스코풍으로 그려지는 캐플릿가의 축제에 등장하는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에게 여장남자의 옷을 입히고 그를 흑인게이로 설정한 점이다. 감독의 도발적이고 파괴적인 영상은 첫 장면부터 단숨에 관객을 그 속도와 리듬감으로 숨을 헐떡이게 만든다. 그러나 어찌된 것일까. 감독의 이 모든 파격은 그저 생경함으로만 남아있고 정작 관객을 스크린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것은 역시 셰익스피어의 연금술적인 언어의 마술과 드라마의 짜임새다. 심하게 말하면 바즈 루어만은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다가 제풀에 심드렁해진 꼴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영화의 형식은 왜곡되고 뒤틀려 있다. 그러나 다행히 천재적인 미국 뉴시네마의 청춘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절망과 정열을 오가는 섬세하고 다이내믹한 연기가 영화가 중심축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중세와 포스트 모던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해준다. 강 한 섭<서울예전 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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