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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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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간 헌신적 보살핌’하늘도 도왔다
우주공학자 꿈꾸던 영재 아들
어느날 갑자기 정신질환자 돌변
환청 환각 공포에 잇단 자살시도
“함께 이겨내자” 눈물로 설득
1억달러 기금 모아 연구소 설립
5년전부터 상태 호전 올초 결혼
“아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1991년 당시 벤처기업 투자전문가였던 미국인 개런 스태글린 씨는 프랑스 파리 출장길에 청천벽력 같은 전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생각했다. 아들 브랜던 씨는 높은 지능지수(IQ) 덕분에 학년을 2계단 건너뛰고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서 연속 만점을 받은 영재였다. 우주공학자를 꿈꾸는 아이비리그 신입생이었다. 이 전화 한 통이 이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뉴욕타임스가 세계 정신질환 주간을 맞아 스태글린 씨 부부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아들의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역경을 이겨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질환자 치료 및 연구 지원에 나선 이 부부의 활동에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18년 전, 대인기피 증세가 심해지던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딴사람으로 변했다.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며 울부짖었고,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며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극심한 대인공포증과 불면증, 통제되지 않는 언행이 그를 괴롭혔다.
고통스러운 정신분열증 치료 끝에 브랜던 씨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다트머스대 기계공학과 졸업 후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우주공학 박사 과정에 동시 합격했다. 하지만 곧이어 2차 위기가 찾아왔다. 졸음과 활기 저하 같은 약물 부작용 때문에 공부를 못 따라갈까 봐 치료를 소홀히 한 것이 잘못이었다. 누군가가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는 환각 증세와 함께 정신분열증이 재발한 것. 가상의 통증이었지만 먹거나 걷지도 못할 만큼 극심했다. “이렇게 평생 살 수는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자살도 수차례 시도했다.
스태글린 씨 부부는 그런 아들을 격려하며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환각의 공포에 질린 아들을 붙잡고 “함께 이겨내자”며 눈물로 설득했다. 현실 부정과 절망, 밝혀지지 않은 발병 원인 때문에 부모로서의 자책감도 컸다. “나도 오빠처럼 되는 것이냐”며 불안에 떠는 어린 딸에게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이후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인 농장을 운영하던 부부는 1994년부터 매년 농장에서 정신질환자 치료 및 연구기금을 모으기 위한 음악회를 열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신경학자와 정신과 전문의를 농장으로 초대해 와인파티와 세미나를 열면서 의견을 구했다. 매년 규모가 커진 ‘스태글린 가족 음악축제’에 15년간 1억 달러 가까운 후원금이 쏟아졌다. 부부는 이런 지원에 힘입어 2005년 25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정신질환 관련 연구상을 제정했고, 지난달에는 ‘국제정신질환연구소(IMHRO)’도 설립했다. 약물치료로 5년 전부터 상태가 크게 호전된 브랜던 씨는 올해 초 결혼해 부모의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IMHRO의 부대표인 스태글린 씨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신질환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조언을 내놨다. 그는 “정신분열증은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의학의 발달로 치료법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며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만큼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대응방안을 찾으라”고 충고했다. 미국에는 5700만 명의 정신질환자가 있고, 이 중 가장 증상이 심한 정신분열증 환자는 2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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