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9월 28일 03시 0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막 파리로 들어서는데 경찰이 차를 세웠다.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그런가. 5명이면 한 차에 탈 수 있는 것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창문을 내리고 “무슨 일이냐” 물어봤다. 내 말이 끝나자 차 안에서는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번졌다. 경찰관은 ‘별 이상한 녀석 다 보겠다’는 눈으로 보더니 대답도 없이 “운전면허증이나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쓱 훑어보더니 보내줬다.
“내 말이 이상했느냐”고 친구들에게 물었다. 피에르로부터 “경찰이 차를 세우는 이유는 검문하려는 것인데 왜냐고 물으니 이상하지 않으냐”는 답이 돌아왔다. 나로서는 한국에서 익숙한 운전습관대로 무슨 이유인지나 밝히고 검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권리의식이 발동한 것인데 이들에게는 경찰이 차를 세우면 군말 없이 응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 스위스 베른에 출장 갔다가 돌아오던 때가 기억이 났다. 스위스와 프랑스 사이 국경을 지나 첫 톨게이트에서 티켓을 뽑고 막 출발하려는데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가로막고는 차를 옆으로 빼라고 지시했다. 세관경찰들이 차들을 뒤지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어떤 차는 세우고 어떤 차는 보내느냐”고 물었다. 경찰은 그냥 검문이라고만 한 뒤 말해주지 않았다. 경찰은 내 차를 30분가량 뒤졌다. 의자 밑뿐 아니라 트렁크 예비 타이어가 있는 곳까지 뒤졌다. 그러고는 나를 옆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니 검문당하는 사람의 공통점 같은 게 얼핏 느껴지기도 했다. 대개 혼자서 차를 몰고 가는 남성이었다. 경찰견까지 동원해 조사하는 것을 보면 마약 같은 것을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조사를 받는 누구도 그렇게 ‘열 받는’ 것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각지도 않게 고속도로에서 30분을 허비하는 것이 분명 기분 좋을 일이 아닐 텐데 모두들 (적어도 겉으로는) 고분고분했다.
프랑스 경찰은 옥외집회 허용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물론 실제로 폭력이 예상되지 않는 한 경찰이 집회를 불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옥내집회도 밤 11시까지 끝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는 나라다. 따라서 옥외집회를 일몰 후 허가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위대도 경찰도 밤에는 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간혹 야간까지 이어지는 시위가 있다면 열이면 열 카쇠르(Casseur)라고 불리는 불량 청소년이 개입하는 불법 시위다. 2007년 파리에서도 일부 한국인이 광우병 촛불시위를 벌였는데 일몰 전에 시위를 마쳐야 해서 ‘촛불 없는 촛불시위’가 된 ‘불행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광화문에서는 성난 불도그 같던 한국인들도 이곳에서는 고분고분하다.
프랑스인은 평소 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사람들도 경찰 앞에서는 고분고분하다. 프랑스 경찰은 친절하지도 않고 국민에게 호감을 사고 있지도 않다. 아마 여기에는 그들과 시비를 벌여 좋을 게 없다는 심리도 작용할 것이다. 어쨌든 그런 관계가 백이면 백 프랑스인들 사이에 질서를 잡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송평인 파리 특파원 piso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