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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18일 2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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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중에는 어로활동 중 피랍된 선원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53) 2년 뒤인 55년 5월 대성호 선원 10명을 시작으로 87년1월 동진27호 선원 12명까지 피랍 어부는 모두 435명에 이른다.
다음으로는 항공기 승객과 승무원 12명. 해군방송선 승선자 12명, 해외근무자 및 유학생 12명, 국내 해안에서 납북된 고등학생 5명, 해경 2명 등의 순이다.
물론 납북자의 숫자가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정원은 71년 서독의 한국대사관 노무관으로 있다 납치된 유성근씨 일가족 4명을 포함해 12명의 납북사실을 2000년 7월에야 확인하기도 했다.
60년대 빈번하던 납북사건은 80년대에 들어 해외로 무대가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90년대에는 중국에서도 납북사건이 발생했다.
95년 7월 안승운 목사가 납치된 것을 시작으로, 사업가 장세철씨가 99년에, 옌지(延吉)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김동식 목사가 2000년 2월에 각각 납북됐다.
그러나 납북자의 송환은 고사하고 생사확인 작업도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이영욱(李永旭) 전 국회의원의 아들 이재환씨는 미국 MIT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여행에 나섰던 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납치됐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재환씨는 지난해 2월 3차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사전 생사확인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납북자들 가운데는 북한을 탈출해 국내에 입국한 사례도 생겨났다.
납북 어부 이재근씨(64)는 2000년에, 진정팔씨(67)는 2001년 탈북에 성공한 뒤 국내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겼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