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정훈/이해찬의원의 말바꾸기

  • 입력 2002년 8월 22일 23시 46분


“인지(認知) 수사를 하기 곤란하니, 대정부질문 같은 데서 떠들어 달라고 했다.”(21일 오전 11시반경)

“대정부질문 준비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검찰 특수부에서 몇 가지를 확보한 게 있으니 질의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21일 오후 6시반경)

“(대정부질문을 해달라는 것은 제보자가) 자기 의견을 얘기한 것이다.”(22일 오전 9시반경)

‘병풍(兵風) 쟁점화 요청’ 발언을 해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킨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의원은 첫 발언 이후 시시각각 말을 바꿨다.

21일 오전 4명의 기자 앞에서 그가 한 최초 발언은 누가 들어도 ‘사전기획’과 ‘내통’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용이었다. 그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배심원 판결은 이미 끝난 상태”라며 이 후보의 ‘중도 낙마(落馬)’ 가능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심지어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 여사에게 소환장만 발부돼도 게임은 끝날 것’이란 요지의 얘기까지 했다.

그러나 파문이 확산되자 이 의원은 대정부질문 준비 과정에서 관련 정보를 접하게 됐다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 대정부질의를 ‘요청’받았다는 당초 표현도 제보자의 ‘권유’나 ‘의견’으로 강도가 약해졌다.

그뿐만 아니다. 이 의원은 21일 오전에는 박영관(朴榮琯·서울지검 특수1부) 부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박 부장이 굉장히 수사를 하고 싶어했다”는 등 정황을 상세히 아는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22일 오후부터는 “3월 당시에는 박 부장이 누군지도 몰랐다”며 파문을 축소시키는 데만 급급했다.

물론 이 의원의 최초 발언이 과시욕 때문에 다소 과장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제보자를 밝히면 병역공방이 엉뚱한 국면으로 번질지 모른다”며 입을 다물고 있는 그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 의원이 검찰측으로부터 직접 ‘병풍 쟁점화 요청’을 받은 게 아니라면 하루라도 빨리 진실을 털어놓는 게 자신의 발언에서 비롯된 혼돈정국을 수습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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