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경기에서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비슷하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강한 중력은 공간을 변형시킨다. 엄청난 중력의 블랙홀은 공간에 깊은 구멍을 만들고, 빛조차도 깊이 파인 공간으로 빨아들인다. 상대성이론이 증명된 것도 빛이 강한 중력의 태양을 지나가면서 휘는 현상을 목격한 덕분이다.
우수한 스트라이커는 블랙홀처럼 수비하는 팀의 공간을 변형시킨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수비수들은 그쪽으로 몰려간다. 경기장의 공간이 왜곡되고 반대쪽에서 찬스가 생긴다.
2002월드컵에서 나타난 최신 전술이나 갖가지 현상 중에는 재미있게도 과학 이론과 맥이 통하는 것이 적지 않다.
축구 선수들의 2대1 패스는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와 너무나 닮았다. 초전도체가 되면 전기저항이 ‘0’이 된다. 어떻게 전기저항이 0이 될까. 전기는 자유전자의 이동이다. 평소에는 자유전자가 금속 원자의 방해를 받지만, 초전도체에서는 자유전자 2개가 쌍을 이뤄 패스를 주고받으며 수비진의 저항을 뚫는다. 이 이론을 ‘BCS 이론’이라고 한다.
히딩크 감독은 늘 ‘멀티플레이어’를 강조한다. 유상철, 송종국, 박지성 등은 수비, 허리, 공격을 오가며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펼친다.
생명체의 멀티플레이어는 ‘줄기세포’다. 줄기세포는 심장, 뼈, 뇌, 피부 등 몸의 모든 기관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만능 세포다. 줄기세포는 배아에 많고, 성체에도 있다. 인기 높은 멀티플레이어처럼 최근 줄기세포로 건강한 내장이나 신경 등을 만드는 연구가 활발하다.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이변인 프랑스의 예선 탈락은 카오스이론의 ‘나비효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의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나비효과’다.
평가전에서 김남일의 지단 밀착 방어→지단의 부상→지단의 결장→세네갈과의 1차전 패배→다급한 마음이 불렀던 2차전의 앙리 퇴장→아쉬운 무승부→구석까지 몰렸던 3차전에서 결국 패배. 김남일의 날개짓이 축구라는 복잡계에 작용해 프랑스 탈락이라는 태풍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물론 김남일 선수의 잘못이 아니라 승부 세계의 비정함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유난히 헤딩골이 많다. 왜 헤딩골이 막기 어려울까. 평면 방정식보다 공간 방정식이 더 풀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평면 방정식은 x와 y축 두 개다. 공간 방정식은 z축이 더해진다. 변수가 하나 더 들어가면서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해진다. 헤딩골도 z축이 더해지면서 수비하기가 더 어렵다.
이탈리아는 ‘빗장 수비’로 유명하다. 한 선수를 제치면 또 다른 수비수가 나타난다. 동물의 방어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피부가 몸을 감싸고 있고, 위는 음식물에 강한 산을 부어 병원균을 죽인다. 그 방어벽을 뚫어도 항체가 있고, 다시 세균을 잡아먹는 세포들이 있다. 그래도 세포가 세균에 감염되면 육탄방어를 하듯 자살을 한다. 철저히 빗장을 친다.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경이는 역시 붉은 악마다.
96년 여름 서울에서 열린 한국 대 중국과의 축구 경기에서 300여명으로 첫 등장한 붉은 악마는 이제 20만명을 넘었다. 붉은 악마는 원자 핵융합과 흡사하다. 수소 원자 2개가 융합돼 헬륨 원자가 되고, 여기서 나온 에너지가 같은 반응을 촉발시켜 수소폭탄도 되고, 태양을 태우는 거대한 에너지가 된다. 붉은 악마는 핵융합을 계속하며 길거리 응원을 불렀고, 2002월드컵을 태우는 거대한 에너지가 되고 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