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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17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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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황제폐하가 강경히 거부한 것을 이 어찌 그 각원(閣員)들이 이에 찬성 서명할 수 있겠는가. 이들 각원이야말로 개 돼지나 다름없는 자들로서 무슨 면목으로 대황제폐하와 이천만 동포를 대할 것이냐.”
이제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으니 정권 내 누군가 소리내어 크게 곡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은 개혁에 노심초사하거늘 이 어찌 그 직속의 수하들이 무리 지어 부패를 일삼을 수 있겠는가. 이들 수하들이야말로 금수나 다름없는 자들로서 무슨 면목으로 대통령과 4000만 국민을 대할 것이냐.”
하나 곡소리는 들리지 않고 허위(虛僞)와 교언(巧言)만이 난무하니 오호(嗚呼), 애재(哀哉)라.
▼두 K씨 이름만 팔면 된다? ▼
이 정부에서 거대 조직범죄를 뿌리뽑는 대검 중앙수사부장과 나라 전체의 부패와 공직기강을 단속하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신광옥(辛光玉) 전 법무부 차관은 ‘진승현 게이트’의 진씨를 본 적조차 없다고 했다. “만약 단돈 몇 푼이라도 받았다면 할복 자살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7년형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진씨는 신 전 차관을 지난해 5월 이후 몇 차례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신 전 차관은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진씨를 만난 기억이 없다고.
진씨의 로비스트인 민주당 당료 출신 최택곤(崔澤坤)씨와의 관계도 석연치 않다. 신 전 차관은 민정수석 당시 정보도 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을 겸 최씨를 4, 5차례 만났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씨는 신 전 차관을 7년전부터 만났다고 했다. 설령 신 전 차관의 말대로 네다섯 번만 만났다고 쳐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사실상 명함뿐인 민주당 교육특위 비상근 부위원장과 무슨 ‘정보선(線)’을 맺겠다고 그렇게 종종 만나야 했는지 아리송하다. 검찰측은 신 전 차관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최씨로부터) 1억원을 한꺼번에 받은 것이 아니라 200만∼300만원씩 여러 차례에 걸쳐 받은 것으로 파악한 모양이다. 검찰측 말이 맞다면 신 전 차관이 최씨를 종종 만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최씨는 한때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 밑에서 일했다고 한다. 대통령 장남인 김홍일(金弘一) 의원과는 대학 동문이다. 최씨는 이들 ‘실세’들의 이름을 팔고 다녔다고 한다. 신 전 차관이 그래서 최씨를 자주 만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최씨는 두 K씨 이름을 팔아 검찰청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고 하니 호가호위(狐假虎威)일 망정 그 위세가 능히 청와대에도 미칠 만하겠다.
‘센 인물’은 또 있다. 김은성(金銀星)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다. 97년 정권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그는 지난해 4월 국정원의 실질적 제2인자인 2차장이 됐다. 당시 국정원장은 이른바 ‘햇볕 전도사’ 역을 맡았던 임동원(林東源) 현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 한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임 원장이 대북문제에 매달리느라 국정원 일은 김 전 2차장에게 거의 맡겨 놓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밑의 경제단장이 ‘정현준 게이트’와 관련해 5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제과장은 ‘진 게이트’에서 1억4600만원을 챙겼다며 줄줄이 구속됐으니 국가정보기관이 온갖 게이트의 ‘로비 본산’이 된 셈이다.
▼제 발밑 썩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의혹의 핵심은 국정원 2차장이 아니다. 그가 ‘진승현 리스트’를 만들어 여권 및 검찰 수뇌부를 압박했다면 압박을 당할 만큼 ‘뒤가 구린 인물’은 대체 누구인지, 그걸 밝혀야 한다.
이런 저런 게이트도 많고 자고 나면 새 의혹이 불거지니 어떤 자가 어느 게이트 소속인지 정리라도 해두어야 할 판이다. 아무튼 청와대 국정원 검찰 민주당 등 집권 세력 내 인물들이 지역을 연고로 끼리끼리 작당을 하고 분탕질을 쳐대는데 제 발 밑은 썩는지도 모르고 연일 무슨 무슨 개혁을 하네,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네 했으니 이제 이 정권이 어찌 낯을 바로 들겠는가. 방성대곡을 한들 누가 들어주겠는가. 오호, 애재라.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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