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얼굴’없는 선행

  • 입력 2001년 12월 7일 18시 06분


12월은 춥다. 수은주가 떨어지면서 몸이 옴츠러들고 또 한 해를 보낸다는 아쉬움에 마음마저 스산해진다. 추위와 이룬 일 없이 세월을 허송했다는 생각뿐이라면 심신이 꽁꽁 얼어붙을 것이다. 다행히 12월 달력에는 수전노 스크루지마저 착하게 만드는 크리스마스가 들어있다. 또 아무리 모진 사람이라도 한 해를 마감한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독지가도 세상을 따스하게 만든다.

▷경기 안산시 사동 고향마을에 사는 900여명의 노인들에게는 ‘홍길동’이라는 이름의 천사가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끌려갔다가 조국 땅에 뼈를 묻겠다며 수년 전 귀국한 외로운 노인들이다. 2년 전 홍길동이 나타나 노인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시작했다. 작년에 4000여만원의 돈과 김장용 무 배추 등을 지원했던 그는 올해 다시 6000여만원을 보내왔다. 이 독지가는 안산시청에 “신분이 노출되면 후원이 중단되니 익명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홍길동이다.

▷‘독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경북 출신의 40대 중반 사업가’도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이다. 이 사업가는 작년 12억원의 장학금을 경남도에 기탁한 데 이어 올해 3억원을 또 보내왔다. 그 또한 신원을 공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경남도는 다른 인적사항은 비밀에 부치는 대신 그의 호를 따 ‘백엽장학재단’을 만들어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백엽은 훌륭한 인재가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해마다 기금을 늘려 50억원가량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너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면서 하는 선행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얼굴’ 없는 독지가들의 은밀한 선행은 더욱 아름답다. 세태를 좇다보면 흥청망청 떠들썩한 송년행사를 피할 수 없는 현대인들. 오늘 저녁 퇴근길에 구세군 자선냄비에 작은 정성을 보태면 어떨까. 이 겨울이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방형남논설위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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