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에게 '달빛정책'이라도"수장 중국인 25명 추모집회

  • 입력 2001년 10월 14일 18시 36분


14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구로6동 서울조선족교회(담임목사 서경석·徐京錫) 앞마당에 대부분 불법체류자인 조선족 동포 30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곳에서는 8일 전남 여수 앞바다로 어선을 타고 밀입국하다 질식사해 바다에 던져진 25명의 중국인들을 추도하기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말마다 취업자리를 알아보거나 친지들을 만나 안부를 나누느라 교회는 항시 들뜨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였지만 이날만은 숙연함이 감돌았다.

이번에 숨진 중국인들은 모두 한족이었지만 조선족 동포들은 자기에게 닥친 일로 느끼는 듯 했다.

“단속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밀입국은 계속 될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땅에 오는 조선족들에게 햇볕정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달빛정책’이라도 베풀어주십시오….”

불법체류중인 조선족 강남희씨(45·여)의 조사가 이어지자 지난날의 고생이 생각나는 듯 여기저기서 조선족 동포들이 눈물을 훔쳤다. 특히 동포들이 나와 조선족 동포와 한족들의 밀입국 실태를 증언하자 감정이 복받친 몇몇 여성들은 자리를 뜨기도 했다.

87년 홍콩을 경유해 밀입국한 50대 중반의 조선족 김모씨(여)는 “7, 8일간 오이조각만 먹고 어선을 타고 오면서 무려 체중이 16㎏이나 빠졌다”며 밀입국 당시의 고통을 증언했다.

김씨는 “중국에서 사망한 뒤 유골이 국내에 모셔진 아버지를 포함해 아들, 손자 등 4대가 국내에서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다”며 “얼마전에는 식당일을 하던 딸이 당국에 적발돼 강제 추방됐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또 “만주땅에서도 소수민족으로 핍박받은 조선족이 고국에서도 버림받아야 하느냐”며 “밀입국을 방지하는 길은 다른 재외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왕래를 허용하는 길 뿐”이라며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금천구 독산동 한 식당에서 일한다는 김모씨(48·여)는 “비록 이번에는 한족이 희생됐지만 앞으로 조선족에게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며 “수장된 사람들의 중국 가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서경석 목사는 추도사에서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 등에 대한 정부의 입국 규제는 이번 사건으로 완전히 실패했음이 입증됐다”며 “25명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조선족 동포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추도 집회가 끝나자 모였던 사람들은 따가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다시 곤궁한 일터로 향하기 위해 삼삼오오 발걸음을 돌렸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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