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밀착취재] 샐러리맨의 우상 손길승 SK회장

  • 입력 2001년 5월 31일 19시 47분


SK 손길승(孫吉丞)회장은 오너의 친인척이나 ‘창업공신’이 아니면서도 5대 그룹의 총수가 된 첫 전문경영인이다. 그는 한국 재벌사에 한 획을 그었을뿐만 아니라 월급쟁이들에게는 꿈을 한 차원 더 높여도 좋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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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길승 회장은 누구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 34층 회장 집무실에서 손회장을 만나자마자 성공비결부터 물어봤다.

“제가 성공했나요. 글쎄…. 한국을 잘 살게 하는데 일조하자는 신념을 갖고 열심히 일해 온 것 밖에 없어요. 일은 우리의 삶에 존재가치를 부여해줍니다. 일은 저를 지탱해 주는 삶의 가치였고, 그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공은 결코 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때의 일화는 일에 대해 얼마나 철저한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경리과장이던 손회장은 불이 채 꺼지지 않은 건물에 경리부 직원들과 함께 맨 먼저 올라가 회사 금고가 무사한지부터 확인했다.

그는 78년부터 98년까지 줄곧 그룹 경영기획실장을 맡았다. 이 때문에 ‘최장수 기획실장’ ‘직업이 기획실장인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획실장을 이렇게 오래한 이유에 대해 손회장은 “일은 많이 하면서 나서면 안되고 때로는 악역도 해야하는 자리여서 자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요직중의 요직을 마다할 사람이 없겠지만 일은 많이 하고 공을 탐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드물다는 이야기. 이런 점에서 손회장은 빼어난 2인자로 꼽힌다. 재계에서는 2인자론에 관한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보다도 한수 위라는 평도 있다.

벤치마킹하는 경영인이 누구인지를 물어봤다. 고 최종현(崔鍾賢) SK회장을 빼고 말해달라고해도 “최회장뿐”이라면서 “그 분은 내 인생의 스승”이라고 대답했다. 손회장의 존경심 만큼이나 손회장에 대한 최회장의 신임도 절대적이었다. “손길승은 부하직원이 아닌 사업동지”라고 불렀을 정도.

손회장은 요즘 외부 강연에 자주 초청돼 나간다. 주요 테마는 기업의 성공과 전략이다. 그가 ‘사령탑’인 SK그룹이 그만큼 잘 나간다는 뜻. 삼성 현대 LG에 이어 자산순위 4위인 SK는 이동통신사업의 SK텔레콤과 정유사업의 SK(주)가 해당분야에서 흔들림없는 1위를 지키면서 재계 2위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안정성이나 기업 이미지 등에서는 1위 삼성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말까지 듣는다.

그는 ‘SK텔레콤-SK㈜’ 투톱 체제의 기반을 닦은 일등공신. 최종현회장이란 ‘거목(巨木)’ 아래에서 두 회사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과 유공을 인수하는 실무 책임자였기 때문.

손회장은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을 두 축으로 물류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SK를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21세기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이 될 중국지역에 그룹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전략이 현실화되면 “SK가 정유와 이동통신 빼면 뭐 있느냐”, “두 주력사가 모두 안방기업”이라는 일부의 비아냥은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98년에 그가 그룹 회장이 된 이후 ‘SK호(號)’는 순항을 하고 있다. 아직은 이렇다할 암초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2인자가 아닌 1인자인 손회장이 SK의 한단계 높은 도약을 위해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갈지 재계는 주시하고 있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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