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72)

  • 입력 1997년 12월 3일 08시 13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40〉 아침이 되어 짧고 달콤한 잠에서 깨어났지만 우리는 그 포근한 잠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다시 한 덩어리로 엉겨붙어 쾌락의 비단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한번 엉겨붙은 우리는 낮이 될 때까지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한낮이 되었을 때에서야 우리는 숨을 할딱거리며 떨어져 누웠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뒤에서야 우리는 쾌락에 지친 얼굴들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어젯밤에 벗어놓은 옷을 주워입었습니다. 옷을 다 챙겨입은 뒤에는 쾌락에 지쳐 아랫도리를 후들거리며 식탁을 준비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는 동안 내내 나는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까닭없는 슬픔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그녀 또한 눈길을 내리깔아 내 눈을 피하며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나와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그녀도 나도 쉬지 않고 술을 마셔댔습니다. 술에 취해 머리가 몽롱해지자 나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소. 나는 마신의 저주를 풀어 당신을 이 지하 굴에서 구출하고 말겠소』 내가 이렇게 말하자 여자는 핼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쓸데없는 말씀은 하지 마시고, 이것으로 만족하세요. 열흘 중 하루가 마신의 것이니, 나머지 아흐레는 당신의 것이잖아요』 그녀가 이렇게 말했지만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나는 허세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시끄럽소! 열흘에 하룻밤이 아니라 평생에 하룻밤이라도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당신을 품고 잘 수 없소. 지금 당장에 나는 저 주문이 새겨진 벽을 부수어 마신놈을 불러내겠소. 그리고 내 그놈을 죽여버리고 말겠소』 내 말을 들은 여자는 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애원했습니다. 『오,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짓이랍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이미 자신을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 자신은 파멸되어도 상관없소. 이제 닷새 후면 그 못된 마신이 나타나 당신을 끼고 잘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나는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오. 이제 당신은 내것이오. 당신의 입술도 젖가슴도 허벅다리도 모두 내것이란 말이오. 나는 이제 나외에 어떤 사람도, 어떤 마신도 당신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할 거요』 내가 이렇게 소리치자 여자는 두 눈 가득히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내 목에 매달리며 말했습니다. 『오, 저를 사랑하는 당신의 말씀, 듣기만 하여도 저의 온몸은 기쁨으로 들뜬답니다. 그러나 참으셔야 해요. 함부로 날뛰다가 우리는 그 달콤한 밀회마저도 가질 수 없을 거예요. 우리의 사랑은 영영 막혀버린단 말이에요』 그녀의 그 간절한 말도 나의 귀에는 이미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 마술의 벽을 힘껏 걷어차고 말았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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