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05)

  • 입력 1996년 11월 5일 20시 30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12〉 현석은 언젠가 이런 말도 했었다. …당신을 보고 있으면 좋기도 하고 괴롭기도 해.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기분도 들고. 그런 감정이 내게로 다가오려는 그의 발길을 무겁게 만들었던 걸까. 『난 그걸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아. 당신이 마지막에는 타인으로 남으려고 하는 것을. 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마지막 헤어지던 날도 현석은 그렇게 말했다. 당신은 한번도 나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 라고. 현석은 말을 끊고 허공을 보고 있다. 그가 나에게 뭔가를 정확하게 그리고 자기가 느끼는 것과 같은 강도로 전달하려고 신중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침묵하는 동안 길 바깥에서 지나가는 차 소리가 유난히 크고 분주하게 들린다. 어디를 저렇게 급히 가야만 하는 걸까. 바람이 불고, 그때마다 가로등 불빛 속으로 마른잎이 몸을 떨며 떨어져내리는 이 늦가을 깊은 밤에. 『당신하고 같이 사는 일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어. 나도 독신으로 사는 데 익숙해졌고….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 『왜?』 『당신은 억지로 냉소를 짓는 데 지쳐 있어』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나서 현석의 옆에 나란히 기댔다. 그가 고개를 삐딱하게 쳐들고 나를 보며 말한다. 『냉정하고 강한 척하지만 당신은 소심하고, 비겁하고, 그리고 감상적이야. 이젠 나도 안 속아』 『농담만 해달라고 했더니 금방 이렇게 농담을 잘 하게 된 거야?』 『정체가 탄로났을 때 이렇게 대범한 척하는 것, 그게 바로 당신의 소심함이야』 『잘 봤어. 나 정말 소심해』 『스스로 먼저 공표해버리면 덜 창피하다고 생각하겠지? 그게 비겁한 거라구』 현석이 언제나 논리적이긴 했다. 하지만 대범한 사람이 치밀하지는 못한 것처럼 논리적인 사람은 순발력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해왔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재치 있는 사람을 좋아했으므로 현석이 나를 제대로 공격하는 데에 기분이 좋아졌다. 『당신, 쇼 엠씨를 해도 되겠어. 그동안 재치문답 학원이라도 다닌 거야?』 하고 내가 계속 빈정거리는데도 현석은 그다지 굽혀드는 기색이 없었다. <글 : 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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