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유시민의 뇌피셜, 또는 변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5일 1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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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가장 잘 말해주는 수식어가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하는’ 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노 386이었던 김영춘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친노 유시민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저토록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개탄했대서 유명해진 표현이다.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

덕분에 ‘싸가지 없는 진보’는 좌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민주당이 집권당이 되기 전엔 쇄신론이 일 때마다 “싸가지 있는 집단으로 거듭나자”는 소리도 나왔다. 유시민 자신도 “두고두고 나를 가두는 올가미가 될 것”이라며, 특히 딸을 둔 아빠로서 아파했다고 들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동아일보DB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동아일보DB

마침내 유시민이 이 말에서 벗어나게 됐다. 과거엔 옳은 말을 싸가지 없이 했지만 이젠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고 있다. 24일 ‘유시민의 알릴레오 시즌2’ 생방송에선 법무부 장관 조국의 아내인 동양대 교수 정경심이 검찰의 압수수색 전에 컴퓨터를 반출한 데 대해 유시민은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상상초월 궤변을 쏟아냈다.

“검찰이 압수수색해서 장난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정 교수가) 동양대 컴퓨터, 집 컴퓨터를 복제하려고 반출한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검찰이 엉뚱한 것을 하면 증명할 수 있다. 당연히 복제를 해줘야 하는 거다.”

●검찰이 장난칠까봐 컴퓨터 반출?

별건 수사, 먼지 털이 수사 소리는 들어봤어도 검찰이 압수수색해 가져간 증거에 장난쳐서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자기 머리에서나 나온 생각을 검증된 사실처럼 말하는, 무(無)논리로 논리도 이기고 만다는 뇌피셜(腦+official)인지는 모르겠다. 검찰이 증거 조작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전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의 태블릿 수사에서 알았는지, 이 정부의 적폐 수사를 보고 알았는지 유시민은 분명히 밝히기 바란다. 유신독재도 아니고, 신군부독재도 아니고, 아직은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죄를 조작한다면 촛불 아닌 횃불이 타오를 일이다.

그 묵직한 컴퓨터를 사람까지 동원해 빼돌린 이유가 증거보존용 복제를 위해서라는 소리도 생전 처음 듣는다. 좋게 말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이고, 솔직히 말하면 웃기는 짜장면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뉴시스
조국 법무부 장관. 뉴시스

유시민이 진지하게, 근거 없이 한 말이라면 20일 “불법 정보, 허위 정보 유통으로 여론이 왜곡되고 공론의 장이 파괴되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즉각 가짜뉴스 규제에 나서야 한다. 만일 유시민 단속 전에 우파 유투버부터 잡는다면 역풍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위선좌파’ 검찰수사 막기 총출동

유시민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수사를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며 정경심 영장이 기각되면 검찰 책임이라고 직설을 쏘았다. 자칭 ‘어용 지식인’이니만치 문재인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조국을 지켜줌으로써 다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같은 한을 남기지 않겠다는 충정으로 봐줄 수도 있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유시민은 대통령 될 욕심이 큰 사람”이라며 “경쟁자인 조국이 낙마하는 것을 내심 원하지만 대통령이 조국을 임명한다고 하니 잘 보이려고 이런 위선 행동을 한 것”이라고 폭로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도 모자라 이젠 ‘위선 좌파’로 공개 인증이다.

그래도 한때는 싸가지 없지만 옳은 말을 한다던 유시민이 왜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는 ‘변절’을 한 것일까. 2007년 그는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이 맞을 수 있다”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고 오마이뉴스에 소개됐다. 자기는 논리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자기 메시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서적 반감을 줬다고 반성하는 모습이었다(‘민주신당’이라는, 지금은 아무도 기억 못하는 정당의 대선 예비후보 자격으로 한 인터뷰여서인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의 나꼼수화, 국민수명 단축화


방송에 시사평론가로, 잡학박사 타이틀의 예능인으로 등장하면서 현란하고도 있어 보이는 말빨로 대중을 즐겁게 했던 유시민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박명수 씨 어록을 들려드리자면 ‘참을 인(忍) 세 번이면 호구’ 된다. 우리도 성질 한번씩 내야 한다”거나, 김정희 추사체를 놓고 ‘기름이 쑥 빠진 글씨’라고 평하는 등 알기 쉬운 ‘지식 도매상’ 같은 말로 잘 팔리는 관종(관심종자)이 된 것도 사실이다(틀린 말도 자신 있게 하는 바람에 제작진은 팩트에 어긋난 말을 편집해내느라 고생했다는 말도 있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어떤 논리로도 풀리지 않는 언사로 정서적 반감은 물론 육체적 반감까지 안겨주는 형국이다. 마치 무엇에 씌었거나, 대통령병(또는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싶은 병)에 걸렸거나, 어디서 조국 수호 지령이나 받은 것처럼.

노 정부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꼼수’가 이 정부 들어 주류로 등극하면서 지지층은 결집시키되 나머지 국민들은 기막혀 제 명에 못 살게 하거나, 최소한 조국 피로증에 걸려 더는 관심 갖지 않게 만들려는 고도의 전략적 꼼수인가 싶기도 하다.

●차라리 진중권이 진보답다 싶었으나…

이런 유시민에 비하면, 말빨로 따져 손톱만큼도 밀리지 않던 동양대 교수 진중권이 조국 임명에 찬성한 정의당에 말없이 탈당계를 냈던 것은 훨씬 진중하고 진보스럽다(하고 끝내려 했더니 정의당의 만류로 탈당을 철회했다고 한다. 젠장). 35년 전 ‘서울대 민간인 폭행 사건’에서 무고한 시민을 폭행해 실형을 받고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러시아 시인의 시구로 잘난 척 항소이유서 끝을 맺었던 유시민. 그 조국이 조국(曺國)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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