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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언제까지 과거사의 노예로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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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언제까지 과거사의 노예로 살아야 하나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19-08-30 13:55수정 2019-08-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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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울산 현대모비스 공장에서 열린 친환경차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연설 중인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인간관계도 그렇지만 국제관계에선 말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과거의 잘못을 인정도 반성도 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난함으로써 악화일로의 한일갈등에 재차 기름을 부었다.

이틀 전 이낙연 총리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했던 발언이 대통령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30일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했으나, 집권세력 내에서 지소미아 재검토를 언급한 건 이 총리가 처음이었다. 병자호란 때 역적이 될 것을 각오하고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처럼, 나는 지일파(知日派) 총리 이낙연이 좀더 강하게 외교적 해결을 모색해주길 바랐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파기 관련 회의에 참석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임진왜란 아닌 병자호란에서 교훈을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라고 대통령은 일본을 비난하며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기억과 성찰도 미련하게 하다간 과거사의 노예가 될 뿐이다. 잘못된 기억과 성찰로는 교훈을 얻기는커녕 더 끔찍한 잘못만 반복할 수도 있다.

일본의 보복 초기, 문 대통령은 열두 척 배로 나라를 지킨 이순신을 언급하는 바람에 무능한 선조와의 동일시를 자초했다(대통령이니까!). 지금 우리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면 임진왜란 보다는 병자호란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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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가도입명(假道入明·명으로 가려고 하니 길을 빌려 달라), 정명향도(征明嚮導·명을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안내하라)를 외치며 침략해 도리 없이 당했던 임진왜란이었다. 병자호란은 다르다. 그리고 현 정권과 희한한 공통점도 적지 않다.

●文정부는 혁명세력이었나


첫째, 반정(反正)으로 왕을 갈아 치웠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헌정질서에 따라 당선되고 취임했다고 믿지만(전임 대통령은 시위 때문에 하야한 것이 아니라 탄핵에 의해 해임됐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촛불 ‘혁명’에 의해 탄생했다고, 마치 혁명세력처럼 강조해왔다.

자신들의 도덕성이 전임정부를 능가한다고 믿기 때문인지(조국을 통해 실상은 드러났다), 그래야 혁명적 정책이 가능해서인지(잘하면 자유민주주의도 뒤엎을 수 있다), 아니면 국민 모르게 진짜 혁명을 했기 때문인지는(촛불시위는 좌파의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정부 전복이었던 것이다) 알고 싶지도 않다.

●전임정부 외교 뒤엎어 전쟁 자초

둘째, 반정 명분상 전쟁은 불가피했다.

1506년 중종반정 명분이 연산군의 학정(虐政)인 데 비해 1623년 인조반정 명분은 폐모살제(廢母殺弟)와 명청(明淸)과의 외교 잘못이었다. 반정세력의 눈에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명의 재조지은(再造之恩·다 죽어가던 조선을 살려준 은혜)을 배신한 의리 없는 군주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버리는 건 당연했다.

명청 교체기라는 국제정세 변화? 주자학 이념에 빠진 반정세력에게 청은 오랑캐일 뿐, 정권의 안보가 국가 안보보다 중요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일본 총리와 첫 통화에서 전임 정부의 위안부 합의 수용 불가를 시사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위안부 합의를 놓고 양국의 감정싸움이 고조된다면 지소미아 등 한일 간의 다른 협력 관계도 연쇄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고 썼다. 현 정부 특성상 한일관계 악화는 불가피했던 거다.

운동권 NL파 중심인 집권세력은 야당시절부터 한미일 안보협력은 물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중국의 도전에 맞선 미일동맹 강화 같은 국제정세? 그들의 이념 속에 미국과 일본은 제국주의자일 뿐. 한미동맹 해체도 각오해야 할 판이다.

●당신들과 옛 지배세력, 뭐가 다른가


셋째, 반정세력이 꼭 개혁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건 슬픈 진리다.

“(반정세력인) 서인들은 광해군 때의 것이라면 모조리 개혁하고자 하여 폐지해서는 안 될 것도 기어이 고치고 말았다. 광해군 정부의 인사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데 급급했다. 반정 1년 만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 반란군이 입성하자 수많은 백성들이 길을 닦고 환영했을 만큼 민심이 이반됐다.”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광해군시대의 유산과 인조반정’에서 이렇게 썼다.

민생과 재정을 위한 대동법, 호패법, 군적정리 등 개혁정책은 집권세력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인해 실패했다. 그 시절 유행했다는 노래를 소개하는 것으로 현 정부에 대한 서술을 대신한다.

아 훈신들이여/ 잘난 척하지 말아라
그들의 집에 살고/ 그들의 토지를 하지하고
그들의 말을 타며/ 또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
당신들과 그들이/돌아보건대 무엇이 다른가.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씨.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예나 지금이나 포퓰리즘은 효과적

넷째, 떠난 민심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애국심 마케팅과 외교 포퓰리즘이다.

병자년 인조는 ‘청이 우리나라를 업신여기는 것이 심해졌다’며 ‘수천 리 국토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하교로 표현했다(문 대통령은 28일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도 아닌 ‘공장 기공식’에서 “정치적 목적의 무역 보복이 일어나는 시기에 우리 경제는 우리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고 비장한 의지를 표현했다).

나라가 보민(保民)과 양병(養兵)은 못했지만, 척화론자들은 인조가 분연히 진작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의리를 찾는 목소리가 바람처럼 일어나 사기가 저절로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경제를 지키자는 의지와 자신감”이라고 분연히 진작했다).

●네네 하면서 물러난 대신들…지금은?


명과의 대의와 의리 때문에 후금과의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다는 인조의 말에 대신들은 속으로는 걱정을 하면서도 국왕 앞에서는 네네 하면서 물러났고(인조11년) 도성 사람들은 병화가 조석에 박두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리어 그들을 배척하고 끊은 것을 통쾌하게 여기고 있다(인조14)고 인조실록은 기록했다.

현 집권세력이 이런 과거사를 기억하고 성찰했다면 ‘국가적 자존심’을 이유로 지소미아를 파기할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는 마냥 통쾌하게 웃어도 괜찮은가.
1639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이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고 승전을 자랑하기 위해 세운 삼전도비(三田渡碑). 동아일보DB

●패배 뒤 이데올로기 강화에 올인

다섯째, 가장 슬픈 교훈은 전쟁에 지고도 집권세력이란 반성을 모른다는 점이다. 청 태종 앞에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만신창이가 된 인조는 다시 위신을 세우기 위해 성리학적 종법질서 교조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독일은 과거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고 잘못을 시시때때로 확인한다”고 했다. 조선도 그러지 못했다. 나라를 망조로 이끌었던 그 이데올로기로 구석구석 온 나라를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청에서 돌아오는 여성들을 환향녀로 몰아붙인 게 한 예다. 다음 세대에선 예송논쟁으로, 당파싸움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배상하면 참 좋겠지만 이 나라 집권세력도 안하는 일을 남의 나라에 강요할 순 없다. 못 참겠으면 전쟁이라도 해서 받아냈으면 정말 좋겠지만 이 정부는 외교로 풀어낼 수 있는 시간도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렸다.

●척화론 후예들,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로

‘경제전쟁’은 일어났다. 이 위기에 산업경쟁력을 강화해 경제 도약의 기회로 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현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보아 과연 가능할지 불안하다.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 극복’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니, 일본 핑계로 마음 놓고 적자 국채 발행할 수 있어 좋겠다.

지금 자행하고 있는 정부실패 정책실패는 모른척하면서, 과거 우리나라의 잘못도 반성하고 개선할 줄 모르면서, 병자호란과 6·25 때 엄청난 피해를 안긴 중국에는 반성과 배상을 요구한 적도 없으면서,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온 국민을 과거사의 노예로 만드는 의도가 대체 뭔가.

전쟁에 지고도 주자학 교조화에 골몰해 끝내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척화론의 후예들. 그들이 다시 이념을 높이 쳐들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끌고 가고 있다.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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