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왜 ‘도발’이냐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30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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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도발. 심심한 평화보다는 치열한 전쟁이 낫다고 생각한다.’
생전 처음 내 책을 내면서 책날개에 썼던 자기소개 중 한 토막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이 테러를 당한 날, 나는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연수 중이었다. 1년 간 동아닷컴 블로그에 올렸던 뉴욕일기를 담아 ‘마녀가 더 섹시하다’를 내던 그 무렵, 나는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기자들은 큰 사건이 터지면 가슴이 뛴다.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으면 정말 심심하다. 2002년 여름 동아일보 첫 여성 논설위원(사실 나는 ‘논설위원인데 여자더라’ 쯤으로 봐주기를 바랐다)이 된 뒤엔 ‘횡설수설’ 하나 쓰면 온 세상이 내 꺼였다. 기자회견이든, 인터뷰든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고 나면 꼭 “왜요?” 물었고, 상대방은 당황한 듯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도 새로운 각도에서,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으로 내 글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모바일공간에 새롭게 글 쓰는 자리를 마련하니 나의 도발본능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대개 신문에서 도발이란 단어는 ‘북한의 핵 도발’ 때나 등장하고, ‘정부는 단호히 대처해야’라는 정답으로 끝나지만 도발은 기자의 특권이기도 하다. 도발적 질문!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는 질문에 열흘 이상 대통령과 청와대 관련 기사와 칼럼이 쏟아져 나온 걸 보시라.

도발(挑發).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함.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곤 나는 혼자 픽 웃었다. 저널리즘 책에 등장하는 감시견의 원칙 ‘괴로워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편안한 사람을 괴롭게 만들라(Comfort the afflicted and afflict the comfortable)’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19세기 말 시카고의 기자이자 유머작가가 가공인물의 입을 빌어 한 얘기였지만).

꼭 도발적 질문이 아니어도 좋다. 도발적 눈빛, 도발적 유혹, 도발적 행동, 도발적 글쓰기…. 도발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잠자는 감각을, 너무 바쁘고 일이 많아 다른 쪽엔 전혀 신경 못쓰는 이성과 지성을 살짝 건드려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이런 도발을 하려면 나부터 내 안 어디엔가 숨어 있는 세포를 찾아야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2019년 나는 도발을 하기로 했다.

※사족…능력 탓에 매번 도발적 글쓰기는 안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오늘은 착해졌네 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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