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개봉’ 겪으며 많은 걸 배웠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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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
데뷔작 ‘파수꾼’ 이후 9년 만에 신작… 인물감정보다 사운드-비주얼에 집중
“지옥 같은 세상에서 탈출 꿈꾸는 청춘들 이야기 그리고 싶었어요”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로 공개되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2개월을 보낸 윤성현 감독은 “공개된 것만으로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 영화의 청년들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로 공개되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2개월을 보낸 윤성현 감독은 “공개된 것만으로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 영화의 청년들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사냥의 시간’의 윤성현 감독(38)은 당초 지난달 첫 주에 인터뷰하기로 했다. 데뷔작 ‘파수꾼’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이 영화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스페셜 갈라에 다녀온 뒤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 2월 말 언론 배급 시사회 직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폭증했고 개봉은 전면 보류됐다. 이후 배급사와 해외 세일즈사의 법정 공방 끝에 이 영화는 23일 넷플릭스로 세계 190개국에서 동시 공개됐다.

27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윤 감독은 “어떤 분들은 저에게 정신병 안 걸리고 잘 버틴다 하더라”며 웃었다. “컵에 물이 절반만 있어도 ‘반이나 있네’ 하는 성격이에요. 30년 뒤에 돌아보면 인생의 큰 자양분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겠죠.”

그를 2011년 최고의 신인 감독 자리에 올린 파수꾼은 사춘기 남학생들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파수꾼이 인물의 감정 변화와 내러티브에 집중했다면 사냥의 시간은 영화 장르의 또 다른 매력, 사운드와 비주얼에 초점을 맞췄다.

“젊은 세대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한국영화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에요. ‘파리대왕’ 같은 아이들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해요. 두 번째 영화도 자연스럽게 청년 이야기로 만들게 됐네요.”

‘사냥의 시간’에는 박정민 이제훈 최우식 안재홍(왼쪽부터) 등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들이 참여했다. 넷플릭스 제공
‘사냥의 시간’에는 박정민 이제훈 최우식 안재홍(왼쪽부터) 등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들이 참여했다. 넷플릭스 제공
시점과 장소가 불분명한 가까운 미래, 사회시스템은 무너지고 부랑자와 시위대가 넘쳐나는 도시에서 갓 출소한 준석(이제훈)과 친구들이 ‘미래를 위해’ 카지노를 터는 한탕을 기획한다. 손쉽게 성공한 것 같은 그때 정체불명의 한(박해수)이 이들을 쫓으며 추격전이 펼쳐진다.

“2016년 시나리오를 쓸 때 한국사회를 지옥에 빗댄 말들이 나왔어요. 청년의 사회적 박탈감, 지옥 같은 세상에서의 탈출을 소재로 한 장르물을 만들고 싶었죠.”

그의 지옥도는 영화에서 시청각적으로는 제대로 구현됐다. 실제 유럽이나 남미의 슬럼가 이미지를 빌려와 무너진 콘크리트와 그라피티(낙서)로 뒤덮인 삭막한 도시를 만들어냈다. 강렬한 붉은색 조명으로 불안과 공포를 더했다. 스산한 배경을 두고 펼쳐지는 추격전과 긴장감 넘치는 음악은 ‘극장에서 개봉했더라면…’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파수꾼의 배우 이제훈과 박정민은 이번에 다시 만났다. 최근 충무로에서 핫한 최우식 안재홍 박해수도 함께했다. “최우식 배우는 동물적이고 직관적으로 연기하는데, 굉장히 영민해요. 연기 폭이 넓은 안재홍 배우는 테이크마다 다른 연기를 펼쳐요. 미스터리한 인물 한을 표정에서 드러나게 하고 싶었는데 첫 촬영 때 박해수 배우가 한이 살아왔을 삶을 얼굴에 담아내서 감격했습니다.”

박수 받는다고 감동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윤 감독이지만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 1600명의 박수를 받았을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

“‘베를린영화제 관객은 예의상 박수 안 친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중간에 나간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거든요. 배우들 앞에서 관객이 나가고 박수도 못 받으면 악몽 같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격한)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영화를 만들 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는데 현지 관객이 이걸 조금이라도 알아주셨다는 생각에 감격했어요.”

기대가 커서였을까. 국내 관객의 평은 엇갈린다.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음악에도 빈약한 서사는 아쉽다는 관람평이 송곳처럼 꽂힐 법도 하다.

“서사보다는 영화의 시청각적인 본질에 충실하게 만들자는 목표였어요. 내러티브나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아쉽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아이들이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즐기신다면 바랄 게 없습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사냥의 시간#윤성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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